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탈북 여대생 이경화 씨 “나도 북송 경험… 공포에 떨 그들 위해 용기 내”

입력 | 2012-03-12 03:00:00

4일 강제북송 저지 콘서트서 홀로 얼굴 공개한 탈북 여대생 이경화 씨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공개한 건 중국 공안에 잡혀 표현할 수 없을 공포에 떨고 있는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념기념관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 북송 저지를 위한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 콘서트 현장. 이날 참석한 탈북 청소년 및 대학생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이경화 씨(26·여·연세대 국문4)만은 민얼굴이었다. 그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강제 북송 위기에 처해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 눈물의 편지를 읽었다.

탈북자들이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는 건 사생결단의 결정이다. 북한 당국에서 탈북자 신원을 파악해 북한의 가족이나 친척을 보위부로 끌고 가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고 고문하거나 심지어 처형할 수도 있다.

9일 오후 연세대에서 만난 이 씨는 “마스크를 벗고 편지 낭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친척들이 걱정돼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마음을 움직인 건 본인의 강제 북송 경험이었다. 그는 2005년 중국으로 최종 탈북하기 전 강제 북송돼 보위부에서 신문을 당한 악몽 같은 기억이 있었다.

이 씨가 탈북하기 직전 어머니는 두 번의 탈북 끝에 강제 북송돼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다리를 쓰지 못하고 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몇 달을 아무 말 없이 앓기만 했다. 먹을 것이 없어 하루 종일 굶던 이 씨는 살기 위해 2003년 12월 탈북을 했지만 3일 만에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 [채널A 영상]“南가면 엄마 찌개 먹을래…” 탈북자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

보위부에서의 생활은 끔찍했다. 그들은 탈북자 수백 명을 창문이 없어 한겨울 칼바람이 들어오는 보위부 복도의 의자에 빽빽하게 앉혀놓았다. 의자에서 다리를 움직이기라도 하면 욕설과 함께 폭행이 시작됐다. 밤이면 탈북자가 각목으로 수백 대씩 얻어맞으며 내는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짐승보다 못한 생활에 시달리던 이 씨는 한 달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딸이 탈북했다는 이유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어머니는 다시 탈북한 상태였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이 씨는 2005년 재탈북해 중국 브로커를 통해 가까스로 2006년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왔지만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자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은 찢어졌다. 어머니가 붙잡혔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씨는 “강제 북송을 앞둔 탈북자의 심정은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여러 번 북송돼 고초를 겪었던 탈북자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모든 걸 체념한 상태”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2010년 인터넷의 한 새터민 카페를 통해 중국에 있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지금도 보위부에 끌려가 ‘의자 고문’을 당한 기억 탓에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 틈에 있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 씨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과감히 얼굴을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공안에 잡혀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이렇게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걸, 당신들을 이토록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마스크를 벗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관련 행사 때마다 탈북자 대표로 얼굴을 드러내고 눈물로 호소할 계획이다. 그는 “남한 사람들에게 통일과 탈북자에 대한 강의도 하면서 죽음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