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사회부 차장
미국 영화 ‘모범시민’도 그렇다. 아내와 딸이 눈앞에서 흉악범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그 흉악범이 붙잡혔지만 증거가 없어 살인죄 대신 가벼운 죄명으로만 처벌받고 다시 거리를 활보한다. 범죄자의 인권만 보호하는 사법제도에 회의를 품은 피해자 남편은 직접 흉악범을 붙잡아 산 채로 토막 내버린다.
이 영화의 비판 대상인 사법제도의 문제점이 한국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부산고법은 A 씨에게 시체 은닉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살인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A 씨가 숨진 사람을 자신인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려 한 사실까지 확인됐지만 살인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 혐의를 벗었다. 피해자 부모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그렇다면 누가 우리 아이를 죽였단 말이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이 ‘시신을 불법으로 없앴지만 살인죄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셈이니 상식 수준의 시민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진짜 범인이 어디에 숨어 있든 이런 상황에서는 세 가지 유혹이 발생한다.
먼저 고문이다. 흉악범은 물론 누가 봐도 돈 받은 정황이 명확한데 ‘증거 없다’며 뻔뻔하게 여의도를 활보하는 정치인을 보면 수사관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강한 고문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 다음 유혹은 복수다. 똑똑한 법관과 검사가 뻔한 진실 앞에서도 오히려 법 때문에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할 때 피해자는 자구책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형제를 잃은 피해자 가족 측은 보복을 염두에 두고 용의자에게 미행을 붙이기도 했다. 법이라는 울타리가 피해자를 방치하고 범죄자의 인권만 보호한다는 느낌이 들 때 이 유혹은 영화 관객처럼 제3자에게도 강렬하게 작용한다.
마지막은 범죄자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더 영악한 범죄를 저지르려는 유혹이다.
법원도 “물증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만 하지 말고 공판중심주의의 장점을 살려 수사에 버금가는 재판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범인 99명을 놓쳐도 억울한 1명을 만들지 말라’는 격언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범인은 없고 피해자만 있는 판결이 속출하는 게 정의인가.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