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방사성물질인 세슘(Cs-137)이 아스팔트에서 발견되기는 했지만 방사선량이 자연에서 받는 연간 평균보다 4분의 1 정도 높을 뿐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1mSv)보다 낮다고 확인한 바로 다음 날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도 노원구는 왜 아스팔트를 걷어냈을까. ‘가중되는 주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는데, 누가 주민의 불안을 가중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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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을 줄인 건 개인의 판단이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문제는 빼낸 ‘지방’이다. 뽑아낸 ‘지방덩어리’를 침실에 두려니 꺼림칙해서 거실에 놓으니 온 가족이 싫어한다. 대문 밖에 놓으려니 이웃이 항의하고, 특수 쓰레기통에 버리려니 그 쓰레기통은 아직 설치도 되지 않았다. 어디에 둘 것인가.
이 ‘지방덩어리’가 특별한 이유는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어 방사성폐기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2000년 도로 공사할 때 포장해 11년이 넘도록 멀쩡했던 아스팔트 덩어리가 졸지에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관리해야 하는 골칫덩어리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 느닷없는 방사성폐기물은 도로에서 뜯긴 후 지금 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쌓여 있다. 철거하는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데 적합한 방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주민의 안전만 고려하고 작업 인부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걸까? 보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수포로 그냥 덮어뒀을 뿐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험하지 않은 위험물’에 대해 주변 주민들이 항의하자 한국전력 중앙연수원으로 옮기려 했다가 한전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중랑천 건너 이웃한 도봉구는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며 ‘염병 걸린 이웃’ 보듯 가까이 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주에 짓고 있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완공 시기는 점점 연기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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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인 미국의 프랭크 라이트는 잘못 설계한 건물에는 담쟁이를 심으라고 조언했다. 노원구든 송파구든 아스팔트를 뜯어내는 토목공학적인 방법보다 그 길을 따라 담쟁이 같은 식물을 심고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으면 그 길이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