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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NBA의 동양인 돌풍

입력 | 2012-03-01 20:00:00


지금이야 해외진출 스포츠 스타가 많지만 1980년대 ‘슛도사’ 이충희의 미국프로농구(NBA) 진출 여부는 국민적 관심사였다. 180cm로 농구선수로는 땅꼬마로 불릴 수준이었지만 상체를 뒤로 한껏 제쳐 던지는 페이드어웨이 슛은 백발백중이었다. 이충희는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 득점 2위에 오르면서 NBA의 영입 제의가 왔지만 병역특례를 받은 뒤 5년간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해외 진출이 좌절됐다. 국내 선수 NBA 진출 1호는 2004년 하승진이다.

▷세계 최고라는 NBA는 흑인이 주름잡는 스포츠다. 농구의 신(神) 반열에 오른 마이클 조던, 줄리어스 어빙,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은 물론이고 현재 코트를 지배하는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듀런트, 르브론 제임스가 모두 흑인이다. 오죽하면 ‘백인은 점프를 못해’(한국 제목은 덩크슛·1994년)라는 영화까지 나왔을까. 절대 다수의 백인 관중이 10명의 흑인 선수가 벌이는 사생결단 결전을 손뼉 치며 지켜보는 장면에서 로마시대 검투사의 혈투를 연상한다는 사람도 있다.

▷1946년 시작된 NBA 농구코트에 동양인 돌풍이 거세다. 2002년 중국의 야오밍이 229cm라는 장신으로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뉴욕 닉스의 제러미 린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농구 ‘지진아’의 요소인 동양인(대만계), 하버드대 출신, 농구선수치고는 단신(191cm)의 3박자를 갖춘 그는 배짱과 골 결정력으로 전설의 농구명가 뉴욕 닉스의 부활을 견인하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othing Is Impossible)’는 광고를 패러디한 ‘Nothing Is Linpossible’이란 문구도 대유행이다.

▷린에게 열광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동양인치고는 꽤 잘하네” 하는 역설적인 편견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흑인 중에 린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는 수두룩하지만 팬들의 주목을 끌지는 못한다. 독일에서 19세기 말 유행했던 황화론(黃禍論)은 유럽 문명에 위협을 주는 아시아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인종주의적 선동구호였다.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기병대에 느꼈던 두려움의 유전(遺傳)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시아인을 보는 서양인의 시각이 어떻게 변하고 있건 키 작은 동양인이 장신 선수들을 돌파해 덩크슛을 내리꽂는 모습을 보면 짜릿함이 느껴진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