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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백희영]근로시간 감축이 필요한 이유

입력 | 2012-02-24 03:00:00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생활과학대학교수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래 직업은 교사다. 전에도 교사(특히 여교사)는 늘 좋은 배우자감에 속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시절에도 교직을 선호하는 청소년이 많다는 조사 결과에 안도감과 함께 의아한 생각도 든다.

삶의 질 향상과 고용 창출 효과


다른 조사에 따르면 젊은 직장인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야근을 하며, 이로 인해 사생활이 없고, 건강이 나빠졌으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실질 임금이 감소해도 휴일근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교권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직이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개념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한 후 근로시간 감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노사정 모두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방법이나 속도 등 각론에서는 적지 않은 이견을 보이는 모양이다. 특히 기업 경영인의 우려가 높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은 여러 면에서 기업을 포함해 우리 사회 모두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산업화 시대에 급속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장시간 근로 관행은 제조업 분야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직장문화로 자리 잡았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OECD 회원국 평균인 1749시간에 비해 무려 25%가량 더 많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143개국 중 68위다. 이처럼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 중에는 긴 근로시간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피로감이 포함된다. 이를 감안해 2010년 노사정위원회가 2020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1800시간까지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은 이를 실천하는 방안 중 하나다.

둘째,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도 약 25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노사정위원회 계획대로라면 2020년까지 현재 고용인구의 18%인 400만 명 이상의 고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청년, 여성, 이른바 ‘베이비부머’ 등 일자리가 필요한 각 계층이 그 혜택을 나누게 될 것이다. 가족단위로 볼 때, 아버지 혼자서 장시간 일하는 형태에서 부부가 함께 또는 5060세대 부모와 2030대 자녀가 함께 적정 시간만큼 일하는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출산 장려-생산성 향상에도 도움


셋째, 근로시간 감축은 일과 가정 양립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저출산 보육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시간 근로제는 외벌이 가족이 대세일 때나 가능했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자아실현 욕구가 높아지면서 맞벌이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장시간 근로는 남녀 모두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하며 결국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정부가 여러 가지 출산장려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큰 효과가 없다. 일과 가정의 양립 등 가족친화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국내 모 기업의 직원 평균출산율이 1.84명에 이른다는 사례가 있다. 부부가 함께 일하고 함께 가정을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출산과 자녀양육 문제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

넷째, 근로시간 감축은 업무에 대한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여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치열한 국제경쟁 시장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에게 근로시간 단축은 쉽지 않은 과제다. 숙련된 근로자를 보충하는 일, 생산량 저하, 임금부담 상승 등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27.1달러(약 3만 원)로 OECD 30개국 중 27위다. 근무시간 연장을 통해 쥐어짜듯 조직성과를 올리는 방식을 지양하고, 충분한 휴식과 행복감을 바탕으로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경영혁신이 필요하다.

총선 대선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복지 담론이 한창이다. 복지란 한마디로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보람 있는 일자리와 함께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고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인 교사들이 두 차례 방학을 고스란히 쉬고 주당 40시간씩만 근무해야 비로소 연간 근로시간이 1760시간이 되어 OECD 평균치에 가까워진다. 세계경제 불황과 우리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지금 근로시간 감축으로 일자리도 나누고, 근로자들의 복지 수준도 올리고, 인구구조도 개선하는 일석다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생활과학대학교수 hypai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