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진실 같음’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몸이 왜소한 사람이 덩치가 큰 사람을 때려 눕혔다는 혐의로 법정에 불려왔다고 가정해 보자. 덩치 큰 사람이 아무리 강변해도 왜소한 이가 “저를 보십시오. 어떻게 저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하면 사람들은 믿는다. 군중이란 원래 숨어있는 진실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진실 같음’에 더 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대중이 믿지 않는 진실보다 대중이 믿는 ‘진실 같음’이 더 설득적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이야 과학이며 계몽과는 거리가 먼 시대이고, 노예를 고문해 받아낸 자백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무지막지한 시대였으니 진실이 세치 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눈부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세기를 거치고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실을 향한 사투가 계속되는 것은 실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과학적 증거가 나오면 그걸 반박하는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등장해 헷갈리게 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황당한 괴담이 나란히 생육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 섭취해 기존 의견을 강화시킨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로 분출되는 의견과 감정의 홍수가 종종 사실과 진실을 휩쓸기도 한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