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을 대하는 두가지 오류
DBR그래픽
○ 화약 병기의 등장
16세기에 총이 처음 등장했을 때 화약병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일반적으로 총과 대포가 기병을 퇴장시켰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총이 나오기 이전부터 기사의 영광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과거 기사가 전쟁을 지배했던 건 기병이 보병보다 우월해서가 아니었다. 보병이 기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 열악했고 훈련이 덜된 병사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고대부터 야무지게 조직된 보병들이 장창을 들고 창의 숲을 형성하면 기병들이 그것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광고 로드중
○ 창 대신 총으로 무장한 기병
이 황홀한 장면에 매료된 기병들은 16세기가 가기 전 서둘러 창을 버리고 총을 집어 들었다. 기병을 위한 짧고 간편한 소총이 개발됐고 이보다 더 간편한 피스톨도 나왔다. 피스톨은 기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겨우 한 발밖에 쏠 수가 없었지만 작고 가벼운 탓에 두 자루 정도는 상비할 수 있었다. 기병은 보통의 유효 사거리인 25m 근처에서 한 발을 쏘고 더 근접해서 한 발을 더 쏜다. 공포에 사로잡힌 보병이 진을 깨고 도망치기 시작하면 기병은 말을 달려 도망치는 적병의 등 뒤에서 칼을 휘둘러 살육을 시작한다. 적이 제법 견고하게 버티면 기병들은 즉시 옆으로 말을 달려 보병의 사격권에서 벗어나고 후위의 기병이 다시 돌격한다. 빠져나간 기병은 본래 대형의 맨 뒤로 돌아가서 다시 총을 장전한다. 이런 식으로 기병들은 보병들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선회하며 보병들을 압박한다.
그러나 이 선회전술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총신이 짧아진 피스톨은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기병은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 위에서 발사한다. 또 선회대형은 복잡하고 낭비적이었다. 총을 사용하면서 백병전을 연습하지 않게 되자 기병들의 전투력은 뚝 떨어졌다. 기병과 보병이 서로 총으로 대결한다고 할 때 보다 효율적이고 명중률이 높은 집단이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피스톨을 이용한 기병들의 선회전술은 요란하고 부산스럽기만 하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겁쟁이들의 전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610년 클루시노 전투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 1610년 클루시노 전투
1610년 폴란드가 클루시노 지역에서 러시아-스웨덴 연합군과 맞붙었다. 당시 폴란드는 유럽에서 제일 낙후한 지역으로 피스톨이 부족해 거의 창과 기병도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러시아-스웨덴 연합군이 선회전술을 사용해서 폴란드군에게 일제 사격을 퍼붓고 선회하려고 할 때 폴란드 기병들은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러시아와 스웨덴 기병들은 당황했으나 피스톨을 장전할 틈이 없었다. 행여나 발사를 해도 적을 제압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았다. 화약무기를 지나치게 신뢰한 탓에 그들은 검술과 창술이 서툴렀다. 용감한 폴란드 기병들은 헛되이 저항하는 신식 기병들의 선회대형을 박살내 버렸다.
광고 로드중
○ 서늘한 칼날, 참담한 패배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러시아의 군사개혁과 전쟁 준비를 책임진 사람은 블라디미르 수코믈리노프 장군이었다.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터키전쟁에 젊은 기병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기병도를 들고 과감한 돌격을 감행해 획기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기병의 검과 창이 위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던 시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전술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문제는 수코믈리노프가 이 단 한 번의 전투 경험을 영원한 진리로 믿었다는 점이다. 그는 차가운 칼날과 용기를 대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그는 화기전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신적인 교관을 모조리 참모대학에서 파면했다. 심지어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당한 뒤에도 러시아군의 개혁을 거부하고 현대전과 현대 군사과학에 대한 연구마저 중지시켰다. 포탄과 소총, 총알 생산 공장 증설까지 거부한 그의 결정 탓에 러시아군은 선진무기와 선진전술은 고사하고 서방 군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포탄을 가지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다. 그 결과 러시아군은 참혹한 패배를 거듭했고 국가와 지휘관에 대한 병사들의 분노가 러시아 혁명과 제정 러시아의 종말을 초래했다.
○ 변화와 신기술을 대할 때 벌어지는 두 가지 오류
광고 로드중
현대사회에는 신기술이 넘쳐 난다. 보수적 태도는 거의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변화에 목말라하는 게 그 증거다. 그러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면 두 가지 잘못을 똑같이 반복할 수 있다. 지도자일수록 자신의 판단과 고집, 선입견이 개인적 욕망과 유혹에 사로잡힌 게 아닌지 늘 검증하고 조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8호(2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기업 승계계획 성공 가이드
▼ Special Report
대중은 왜 강자에게 휘둘리는가
▼ Revisiting Machiavel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