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마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 초대 원장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허대석 원장이 최근 임기를 마치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복귀했다. 그는 3년 동안 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로봇수술, 카바수술, 글루코사민 효능 등 의료계 현안을 다뤄 주목을 받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제공
▽이진한 기자=지금까지 성과는 어땠나?
▽허대석 원장=총 89건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 정책에 반영됐거나 논의 중인 것은 6건이다. 모두 큰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정책에 반영된 것으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환자의 권리인정’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골관절염 환자의 글루코사민 효과 부족 △로봇수술 근거 부족 △라식수술의 장기적 효과 인정 △태반주사 효능 근거 부족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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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재 신의료기술에 대한 평가는 관련 의료법 절차에 따라 하면 된다. 하지만 2007년 신의료기술 평가제도가 실시되기 전에 도입된 의료기술 중엔 충분한 근거 없이 광범위하게 시행됐던 것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로봇수술과 심장판막수술의 일종인 카바수술이다. 이처럼 치료에 도입된 지 오래된 기술도 시간이 지나면 효능이나 부작용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재평가가 필수다. 앞으로도 보의연이 해야 할 일이다.
▽이=하지만 로봇수술은 지금도 현장에서 많이 하고 있다.
▽허=맞다. 아쉬운 것은 재평가 결과가 나와도 제도에 반영되는 행정적인 조치가 없다. 영국의 경우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3개월 내에 건강보험에 반영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해 당사자가 못 받아들이는 점도 아쉽다. 의료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술법이라도 근거가 부족하면 일정 기간 사용한 뒤 자료를 모아 재평가 받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환자가 비싼 의료비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로봇수술은 도입 초기 선진국에선 주로 전립샘암 치료에 사용됐다. 정부가 로봇수술 품목허가를 내줄 때 전립샘암 수술에 대해서만 허가를 내줬다면 지금처럼 혼란이 없었을 것이다. 단지 수술도구로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내줬다.
▽이=카바수술의 경우도 2010년 국정감사 때 안전성과 효능을 두고 격론이 벌어져 보의연이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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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식이 효과 및 부작용이 있느냐 없느냐 논란이 있었는데 라식은 장기적으로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평가 결과를 내놨다. 대개 보의연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는데 의외였다.
▽허=라식수술을 평가할 때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결과를 궁금해했다. 어느 날 라식수술을 평가하던 우리 연구원 중 상당수 젊은 여성이 라식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구원들이 2년 이상 라식수술 결과를 추적해 보니 장기간 안전하고 유효한 것을 미리 알고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많은 환자의 진료 자료가 필요하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실시하는 우리나라는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전산자료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9월 말부터 발효된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이러한 공익적인 의학 연구 자료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선진국에선 공익적인 의학 연구엔 예외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이=일각에서는 쓸데없이 분란만 일으키는 연구원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허=의료비는 갈수록 급상승하고 있다. 지금은 의료시장이 국민총생산의 6.9%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10∼15%까지 올라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료비가 증가하면 의료비 절감을 위해 일방적인 수가인하 조치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근거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이해당사자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의료기술 평가자료를 근거로 수가를 조정하면 합의를 이끌 수 있다. 보의연은 이러한 근거를 만드는 연구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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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부가 신약이나 의료기기, 이를 이용한 의료기술에 대해 근거수준에 따라 등급화해서 허가를 내줘야 한다. 기업에도 신용등급이 좋은 기업과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부실기업이 있다. 기업에 등급을 매겨 은행대출도 차별화한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약이나 기기의 경우, 최소 기준만 맞으면 품목허가를 내준다. 문제는 허가 받는 순간 약이나 기기를 이용한 의료기술의 효과가 100%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술의 근거수준을 등급화하면 환자들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진한 의사·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