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문화부 기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11일간 북한과 가까운 중국의 접경지를 취재하면서 북한의 실정에 대해 실감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북한 사람을 자주 만나거나 북한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였다.
전기가 없는데 어떻게 경제활동이 가능할까. 나진·선봉지구에선 중국 상인들이 중국산 생필품을 내다팔아 북한의 수산물과 임산물 등 1차 생산물을 사오는 유통행위가 대부분이라고 한 대북 사업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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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 주민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다 이들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옌볜에는 한국말을 하면서 북한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국적이 중국 미국 캐나다 등인 사람들이다. 북한에 사업장이 있다는 한 사업가는 북한 주민의 근로윤리는 문제가 크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공동작업에 전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들이 (체제가 개방된다면) 생존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북한의 중간 및 하위 관료들에게는 경제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불이 나서 타버릴까 봐 당원증을 차고 다닐 정도로 당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경쟁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체제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바꿔 놓았고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자승자박의 상황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일성이 창시했다고 북한이 선전하는 주체사상은 인민들의 ‘창발성’을 강조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리도 ‘자발성’과는 정반대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서방의 자유를 호흡한 경험이 있는 김정은이 자리를 굳히는 대로 인민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숨쉴 만한 공기를 허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엄혹한 감시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이미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북-중 국경을 건너오고 건너가는 오늘날 환상일 뿐이다.―옌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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