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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현진]뉴요커들의 새해 포부

입력 | 2012-01-02 03:00:00


박현진 뉴욕특파원

2011년을 떠나보내고 2012년을 맞은 미국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예년과 특별히 다를 바 없었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광장에는 발 디딜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 새해맞이 행사를 벌였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자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어디에서도 2011년을 뒤덮었던 우려와 근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도 새해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16만1000건의 글을 분석한 결과 70%는 2011년의 회한과 새해 포부를 밝힌 글이었다.

이 조사에서 예년과 다르다면 17%에 이르는 글이 선거와 관련된 내용으로, 게시된 글 중 분야별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점점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있는 미국 국민이지만 올해의 선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 한 이용자는 “올해 대통령 선거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적었다. 선거가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미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한국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국에서 새 정권을 뽑을 선거가 치러진다.

지난해 말 만찬 자리에서 만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세대적 기회(Generational opportunity)’라고 불렀다. 새해부터 5년 동안 두 번째 임기를 맞는 그는 지난 5년 동안 지구를 55번 도는 것과 맞먹는 거리를 비행기로 날아다녔다. 147개 국가의 정상급 인사와 870회나 만나며 이런 확신은 점점 굳어져 갔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역사적으로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1950년대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 있었던 동유럽권과 아시아 국가들이 외쳤던 자유의 목소리, 1980년대 후반 냉전 붕괴 이후 찾아온 세계 질서의 재편 이후 세 번째 기회라는 것이다. 그 시작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였다. 선진국에서는 유럽 국가들의 시위뿐만 아니라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로까지 확산되면서 변화의 목소리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중앙아시아까지 격동의 시기가 찾아올 것으로 반 총장은 예상했다. 역사의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런 격랑의 시기에 동토의 땅 북한마저 ‘3대 세습체제’를 맞으면서 세대적인 기회에 정면으로 마주 섰다.

이제 공은 지구촌의 지도층과 각국 유권자들에게 던져졌다. 독재 및 부조리에 항거하는 민주화 바람과 수십 년간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적된 불평등 해소가 변화의 두 축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달라질 북한의 모습을 전망하면서 ‘안드로포프 재즈’ 신드롬을 인용했다. 1982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구소련 서기장 사망 후 KGB 출신 유리 안드로포프가 갑자기 후계자로 등장하자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이때 서방 일각에서 “안드로포프가 서구 음악 재즈를 좋아하니까 냉전 해소에 나설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내리면서 오판을 했다. 격동의 해 2012년을 맞는 지구촌 정상들과 유권자들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워야 할 것이다. 반 총장이 언급한 ‘세대적인 기회’가 ‘세대의 오판’이 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박현진 뉴욕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