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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남을 도우면 새 세상이 열려요”

입력 | 2011-12-09 03:00:00

‘왜소증 장애’ 오진아 기업은행 카드지원팀 계장




오진아 기업은행 카드지원팀 계장(왼쪽)은 “말과 표현이 서툰 자폐아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제공

“장애인이 봉사활동의 ‘대상’이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을 도울 일을 찾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오진아 기업은행 카드지원팀 계장(31)은 ‘왜소증 장애’를 앓아 키가 118cm에 불과하지만 경기 안양의 한 복지관에서 자폐아를 위한 계절학교 선생님을 맡는 등 장애아동을 보살피며 삶의 기쁨을 찾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입행한 오 계장은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기 때문에 봉사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며 “어렸을 때부터 ‘키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하고 열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해 보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1남 6녀 중 여섯째인 오 계장은 형제 중 유일하게 장애를 갖고 있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는 다른 형제자매와 ‘똑같이’ 키운 어머니의 훈육 덕분에 형성됐다.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키가 더 작아 선반에서 물건 하나 내릴 수 없을 때가 많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손이 안 닿으면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가라. 그래도 안 될 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초등학교 때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들이 ‘어머니 한 번 뵙고 싶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학교에 한 번도 안 오셨다”며 “어머니는 ‘학교는 내가 아니라 네가 다니는 곳이고 장애인이라고 선생님이 너를 특별히 잘 봐줄 필요도 없다’고 말씀했다”라고 소개했다.

오 계장은 고교와 대학 때 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의 머리를 깎는 봉사활동을 했으며,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자폐아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 아이들과 같이 1주일간 여름캠프를 떠났을 때 무척 힘들었어요. 자폐아들은 낯가림이 심하고 신체 접촉을 싫어하기 때문에 손 한 번 잡아주기도 어렵고 어쩌다 그 아이들의 물건이라도 건드리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요. 하지만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보살폈더니 돌아올 때는 아이들이 간식을 제게 나눠주더라고요.”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 때 자폐아들을 데리고 기름 제거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안양에서 태안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버스에 타기 싫다는 아이, 장갑과 마스크를 안 쓰겠다고 떼쓰는 아이 등 다른 봉사자들에게 폐만 끼치고 오지 않을까, 아이들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바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별별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태안에 도착한 뒤 많은 봉사자들이 열심히 기름때를 닦아내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일반인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서툰 말과 행동으로 돌을 닦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지금 이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누가 더 돌을 깨끗이 닦았나’ 비교도 하더군요. 봉사활동이 끝난 후 아이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는 최근 농아인협회에서 수화를 배우고 청각장애아동들의 일일 도우미를 하고 있다. 앞으로 청각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거나 제 운명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 태도를 많이 반성하게 됐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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