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경찰서 배근성 경사, 주민 부축하다가 감전사
4일 오후 강원 화천군 하남면 화천장례식장 1호실에는 이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화천경찰서 상서파출소 배 경사의 빈소가 마련됐다. 울다 지쳐 탈진한 아내(40)는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족 휴게실에서 링거주사를 맞고 있었다. 빈소를 지킨 동생 근배 씨(40)는 “일주일 전 형제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했는데 그게 형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며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동생들을 잘 챙기던 형의 사고 소식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교 선배인 김모 씨(44)는 “며칠 전 만났을 때 9일 동문회에서 꼭 보기로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배 경사는 기온이 뚝 떨어져 인적도 끊긴 이날 오전 1시 반경 화천군 상서면 파포리 461지방도 농기계 창고 앞으로 출동했다. 이 마을에 사는 이모 씨(35·여)가 몰던 그랜저TG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전신주를 들이받았고 이 이 사고로 승용차 범퍼 등 차량 앞부분이 파손됐다. 그러나 다행히 이 씨는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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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경사는 노련미를 살려 사고로 놀란 운전자 이 씨부터 진정시킨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사고 현장 주변에 떨어진 범퍼 조각을 줍던 정 씨가 갑자기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본 배 경사는 뭔가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정 씨를 구하기 위해 다가가 그를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배 경사도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이들 옆에는 끊어진 전선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배 경사와 정 씨는 곧바로 인근 화천의료원으로 옮겨졌지만 배 경사는 이미 현장에서 숨진 상태였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정 씨는 서울한강성심병원으로 다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시 이 일대는 비가 내려 도로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안개도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화천경찰서 관계자는 “교통사고 충격으로 전신주와 연결된 3개의 전선 가운데 1개(약 지름 2.5cm)가 끊어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1만3800V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3형제 중 장남인 배 경사는 강원대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경찰에 입문했다. 지금까지 화천경찰서에서 형사계와 파출소 등을 번갈아가며 외근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올 2월 상서파출소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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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파출소 직원 7명 가운데 계급과 나이가 중간 정도였던 고인은 항상 파출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한 모범 경찰관이었다. 조재형 파출소장은 “다른 직원들이 혹시라도 힘들어할까 봐 사고가 난 날처럼 112 신고가 들어오면 항상 먼저 현장에 출동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지난해 ‘경찰의 날’에 범인검거 유공 등을 인정받아 경찰청장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까지 10차례 수상 기록을 남겼다. 그는 어머니(63)를 극진히 봉양했고 7세, 5세인 두 아들의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배 경사의 아내는 화천군 공무원이다. 배 경사의 영결식은 6일 오전 9시 반 화천경찰서에서 경찰서장(葬)으로 엄수된다. 그는 7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정부는 배 경사를 일계급 특진시키고 훈장도 추서하기로 했다.
화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