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계 큰손 된 F학점의 천재들
뮤직비디오 제작사 쟈니브로스의 김준홍(왼쪽) 홍원기 감독이 5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포미닛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다. 평범한 후드티와 점퍼 차림의 두 감독은 기자의 손을 잡고 “오늘 의상 신경 쓴 게 이 모양”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고양=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찌현(남지현)! 브릿지!”
“현아야, 왜 안 해!”
‘오늘은 소녀시대, 내일은 시크릿, 모레는 포미닛’ 식으로 촬영 일정이 잡혀 있는 뮤비 제작사 ‘쟈니브로스’의 홍원기 연출감독과 김준홍 촬영감독. 36세 동갑내기 두 남자는 한국 뮤비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곧 발표되는 소녀시대 신곡은 물론이고 비스트, 포미닛, 샤이니, f(x) 등 내로라하는 아이돌의 영상이 이들 손을 거쳤다.
“감독님과 작업하면 주위에서 늘 ‘뮤비가 신선하다’는 칭찬이 쏟아지죠. 음악 색깔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최고예요.”
포미닛의 히트곡 ‘거울아 거울아’ 뮤직비디오. 쟈니브로스가 제작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인디 밴드 찍을 땐 베이스드럼, 큰 심벌, 작은 심벌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요. 아이돌 뮤비는 가수들의 얼굴과 몸이 중요하죠. 지금은 춤 전문가가 다 됐어요.”
놀랍게도 학점은 ‘F’였다. 피가 철철 흐르는 호러 무비 같은 뮤비를 보던 교수가 끝까지 보지도 않고 “꺼라. 꿈에 나올까 두렵다”며 낙제점을 줬다.
개교 이래 졸업작품을 완성하고도 F학점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된 두 사람은 뮤비 감독의 꿈을 접고 김 감독은 촬영감독 프로덕션, 홍 감독은 광고회사 포스트프로덕션에 입사했다. 포스코 CF ‘철이 없다면’ 편을 맡아 영상 속 자전거 바퀴살을 밤새워 지우면서 ‘이걸 왜 하고 앉아 있나’ 푸념하던 홍 감독. 문득 ‘서울예전 졸업 작품 사건’의 공범 김 감독을 떠올리고 전화를 걸었다. “진홍아, 100만 원 들고 우리 집으로 와라.”
창업자금은 200만 원. 부모님과 같이 사는 홍 감독 방에 전화 놓고 150만 원짜리 컴퓨터 한 대 사들였다. “일단 인디 밴드 뮤비는 다 찍어보자는 게 창업 이념이었어요. ‘끝판왕(최종 목표)’은 서태지로 설정했죠. 노브레인, 바닐라유니티, 바세린의 뮤비를 닥치는 대로 찍었어요.”
‘때깔이 다르다’는 입소문이 퍼져 피아, 넬을 거쳐 에픽하이, 휘성, 환희, 신승훈까지 정신없이 뮤비를 찍던 이들에게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다음 날 만난 ‘끝판왕’ 서태지는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둘을 와락 껴안았다. 서태지 8집(2008년) 수록곡만 7편을 찍고 나니 일거리가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었고 포미닛의 ‘핫이슈’를 시작으로 아이돌 뮤비까지 줄줄이 찍게 됐다.
쟈니브로스는 여전히 배고프다. “미국 가야죠. 메탈리카 뮤직비디오 하나 찍으러. e메일 보내봐야겠어요.” 좀비 영화 마니아인 두 사람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아이폰 영화 ‘좀비헌터’를 장편 영화로 발전시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쟈니브로스가 무슨 뜻일까. 영어단어 ‘zany(엉뚱한, 괴짜 같은)’와 ‘형제(bros.)’의 합성어란다. “느낌이 좋잖아요, 가족 같고. 전 코언 형제가 좋아요. 워쇼스키도.”(홍 감독) “음… 난 라이트 형제!”(김 감독)
고양=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