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레프/파울로 코엘료 지음·오진영 옮김/400쪽·1만3500원·문학동네
저자는 2006년 ‘예루살렘의 길’이라 명명한 세 번째 순례길에 나섰다. 예루살렘을 간 것은 아니다. 넉 달 동안 집을 떠나 영국과 터키, 불가리아 등을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두 주를 보낸 여정을 ‘예루살렘의 길’이라고 정한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특히 저자가 오랫동안 염원했던 ‘순례길’인 횡단열차 여행 얘기로 꾸려졌다.
이야기는 단출하다. 횡단열차 안의 일상 그리고 중간중간 도시들에 내려 출판 관계자를 만나고, 출판 행사를 하는 얘기다. 물론 스물한 살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힐랄과 같이 여행하면서 애정을 쌓는 과정이 나오지만 그마저도 극적인 에피소드가 있지는 않다. 시종 잔잔하게 흘러가는 전작들처럼 이 작품도 평범한 일상이나 대화 속에서 끄집어내는 작은 깨달음들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다른 방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죠.”
삶을 기차여행에 비유해 언젠가 신이 기차를 멈추게 할 때까지 자아를 찾는 여행을 계속한다는 게 저자가 바라본 인생이다.
“내가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말. 기차에 훌쩍 몸을 싣고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