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산업은 '영웅'이 만들어 가는 세계●'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저커버그' 등 천재들의 옹고집 이유는?
바야흐로 '소프트웨어 시대'다. 벤처 붐이 터질 때 쌈짓돈 탈탈 털어서 투자한 국민을 울렸던 그 소프트웨어, 그 얄미운 것이 이제 다시 이 나라의 희망으로 멋지게 컴백했다.
1999년 당시 대학 2학년이던 필자는 조그만 벤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 했는데, 딱히 기술도 없던 회사는 신문광고 한번으로 투자금 10억을 모았다. 곧 200평은 족히 되는 사무실을 임대해 이사했고, 회사 임직원은 뜨거운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해 그 돈을 다 날렸다.
그 당시 내가 일했던 그 회사 같은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생히 기억난다. 오죽했으면 그때 최고 신랑감 1위가 벤처사업가였을까?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35위쯤 된다고 한다. 그렇게 화려했던 그 회사들은 이제 구글 검색에도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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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대한 걱정에 송구, OS문제 걱정 안 해도 돼…'바다'도 있고 리눅스 기반 스마트폰 운영체제 곧 나올 듯…."
염려하는 우리를 달래기 위한 그분들의 배려는 곧 "S모 그룹 소프트웨어 인력 2만 명에 달함" 혹은 "소프트웨어 인력 따로 선발" 등의 기사에 구구절절 드러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통일을 노리던 구글은 이제 큰일이다. 중공군이 바글바글 압록강 건너듯 '2만+α'의 소프트웨어 인재들이 구글을 다시 밀어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컴퓨터학과 학생들은 이제 S그룹의 +α 인재들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수만 명 인재들이 만들어낼 제 2의 안드로이드,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를 생각하니 너무 흥분돼 키보드 치는 손가락이 떨릴 정도다.
■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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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본업 (학교/회사)이 따로 있는 프로그래머 A가 잉여짓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② A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큰 조직(회사)에 알린다. 윗분에게 헛짓했다는 소리만 듣는다.
③ A는 조직 밖 대중에게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④ 투자자들의 눈에 띄어 투자를 받는다. A는 마음 맞는 프로그래머들을 뽑아 제대로 회사를 시작한다.
위의 기본 공식에 몇 가지 사례를 한번 대입해 보자.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에서 박사 논문 준비중 떠오른 검색 알고리즘 페이지 랭크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본업인 박사 논문은 뒷전이다 → 구현된 프로그램을 그 당시 잘 나가던 야후의 임원진에게 보여주고 거래를 제의한다. 야후는 포털인데 검색기능이 너무 훌륭하면 사람들이 금방 포털에서 다른 사이트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거래를 거절한다 → 래리와 세르게이는 아이디어가 팔리지 않아 결국 자신의 기숙사 컴퓨터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 입소문을 들은 주변 몇 사람으로부터 100만불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HP에서 일하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Atari 라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스티브 잡스는, 원시 PC Altair 에 매혹된 동호회 모임 Home Brew Computer Club (집에서 만든 컴퓨터 클럽)의 다른 회원들에게 자랑할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 워즈니악의 세련된 디자인에 동호회 사람들은 감동하고 → 이에 확신을 얻은 잡스는 아직 HP를 떠나지 않은 워즈니악을 설득해 회사를 설립한다. 동네 부자가 2억5000만원을 투자해 본격적으로 잡스의 집 차고에서 애플 PC를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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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위의 기본 템플릿에 실리콘밸리의 영웅들과 혁신적 기술을 대부분 때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조직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든 아웃라이어 (outlier) 해커들은 IT의 큰 패러다임 변화 (PC->웹->클라우드) 속에서 영웅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국을 10여년 세우고 나면, 또 새로운 영웅들이 위의 템플릿에 맞추어 등장하고, 기존 영웅들을 역사 속으로 보내버린다.
■ 왜 꼭 영웅이 필요한가?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지배하고 성장시킨다. 주변에서 조언해주는 어른들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창업자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비전에 따라 회사의 흥망 성사가 결정된다.
저커버그가 이제 만 26살 이지만 페이스북 가치는 삼성의 100조원 시가총액에 가깝게 평가받는다. 지구를 한동안 지배한 것 같은 구글의 레리와 세르게이는 이제 갓 30대 후반이다. 우리의 기업 조직¤5,60대 임원들의 지휘아래 40대 부장, 30대 과장, 그리고 20대 일꾼들 ¤은 새마을 운동 시절부터 변함이 없지만, 실리콘밸리는 젊은 영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컨셉'에 의해 재편된다.
이는 창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소프트웨어들은 1~2명의 핵심 해커들에 의해 개발됐다. 유닉스와 C언어는 켄 톰슨, 데니스 리치 두 사람이 개발했다. 자바는 제임스 고슬링 혼자 만들었고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TCP/IP(인터넷 기술)는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의 자식이다.
물론 후에는 여러 엔지니어가 참여해서 개발을 돕지만, 여전히 기술을 지배하는 건 소프트웨어 영웅들이다. 예를 들어 리누스 토발즈는 지금도 리눅스 커널에 모듈을 추가할지 여부에 대해 100% 독재적으로 결정한다.
필자는 이러한 인물 중심적인 발전은 소프트웨어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브룩스는 그의 베스트셀러 '맨먼쓰 신화(The Mythical Man-month)' 에서 끊임없이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 을 강조했다. 즉 아무리 큰 규모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단 한명만 소프트웨어를 디자인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예를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로지 그의 감각에 의해 디자인되는 애플 제품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흥분을 하던가? 빌게이츠가 MS의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레이 오지'라는 천재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아예 그의 회사를 사 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마저 떠나고 'MBA 경영인' 스티브 발머가 이끄는 MS의 현실은 지금 어떠한가? 애플은 물론 구글 IBM에게도 밀린 처지다. 후발주자인 구글 역시 창업자 두 명은 일관성을 놓치지 않았다. 영웅이 이끌어 가는 IT산업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그래서 영웅의 흥망성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필자 같은 범인 프로그래머들은 영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시대를 따라갈 뿐이다. 운이든, 안목이든 조금이라도 빨리 영웅의 스타트업에 몸을 담는 사람은 평생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구글에서 마사지해주던 안마사는 지금 넓은 저택에서 안마 받으며 살고 있다. 최근 새 영웅 저커버그의 도래에 실리콘밸리의 재능들은 그의 영지 페이스북으로 몸을 맡기고 있다. 페이스북이 주식 상장 하는 날에 일찍 주군을 모신 사람들은 포르쉐 매장으로 향할 수 있다.
■ 우리의 소프트웨어 영웅은 누구일까?
우리의 영웅은 어디 있을까? 따지고 보면 조직을 관리하는 대기업의 임원들이 그 영웅의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들에게서 일관된 소프트웨어에 대한 철학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 영웅의 이름도 확인할 길리 없다.
게다가 벤처붐 이후 살아남은 인터넷 기업들, 그곳의 영웅들마저 여전히 해커의 통찰력과 개념의 일관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 그랬으면 인터넷 검색의 품질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필자는 실리콘밸리 해커들의 전설이야기만 나오면 매번 흥분한다. 그리고 그 영웅전의 등장인물은 너무 많아 외울 수조차 없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단 한번도 전설적 해커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언급을 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탁월한 영웅이 없는데 '2만+α' 의 소프트웨어 인력은 무엇을 해야 할까?
과연 정부와 기업의 잘 관리된 조직과 플랜에 따라 '한국형 안드로이드' '한국형 클라우드' '한국형 소셜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해커가 밑바닥부터 일구어낸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보다는 임원이 아래로 내려 보내는 명령체계가 소프트웨어 강국을 만들어 낸다면, 필자는 그 날로 아버지 시골집에 내려가 소나 키울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10여 년 전의 벤처 바람이, 그 정도의 광풍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훈풍으로 불길 바란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를 믿고 부동산으로 돌아갈 돈이 소프트웨어 영웅들의 손에 쥐어졌으면 한다. 분명 그 영웅은 영광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상민 | 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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