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탈북시인
문제는 남한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국력 차가 어마어마한데도 남한이 그 국력을 퍼주고도 끌려 다니는 정치의 후진성이 문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가령 북한은 3대까지 세습하는 장기 독재정권이지만 남한은 단기간의 성과에 목마른 5년짜리 정부다. 이뿐 아니라 북한의 획일적 구조와 달리 남한은 야당, 시민단체, 언론의 공세에 늘 시달리는 복합구조다. 북한의 대남 전략에 충실히 협조하는 친북좌익 세력들이 맹활약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남한 정부는 상대인 북한도 골치지만 자국 내 국민 설득과 공감대 형성이란 이중 부담감에서 좀처럼 해방될 수가 없다. 더구나 국가 대 국가라는 외교관계가 아니라 한민족이란 족쇄에 묶여 실용적 선택보다 부풀려진 온갖 명분에 쫓길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단지 그뿐이라면 경험과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심각한 문제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실과 원칙의 실종이다. 진실보다 정치가 우선이고, 원칙보다 처세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그들의 원칙만은 언제나 일관했다. 받을 건 다 받아내고도 백주에 대놓고 대포까지 쏠 만큼 자기들의 체제 이익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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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유롭지만 김정일은 과거가 길었던 것만큼 오늘이 초조하다. 중국에 황금평을 열어주든 러시아에 가스관을 허락하든 개방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질식해 사멸할 처지다. 이렇듯 남한이 이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북한에 이성을 가르치는 과정이 된다. 이는 물질의 상호주의만이 아니라 이성의 상호주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현 정부의 비핵화 원칙은 그 첫 실험이고 증거인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햇볕정책을 비판할 줄 알았던 이 정부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북한 인권과 납치 문제, 탈북자 정책에서 진실했는가, 과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때도 원칙을 지켰는가라고 말이다.
장진성 탈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