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관 내 전시실 30일 개관
《비릿한 바닷바람이 제방을 넘어 날아와 코끝을 찔렀다. 짙은 남색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하얀 고깃배 위로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쏟아진다. 전남 목포항의 평화로운 한낮 풍경.》
① 목포문학관 2층에 설치된 ‘김현관’의 내부. ② 김현의 책상을 허형만 시인이 살펴보고 있다. 고인이 1980년대 사용했던 ‘마라톤 타자기’와 하심전자의 16비트 컴퓨터가 눈길을 끈다. ③ 문학과지성사 창립 멤버들로서 이른바 ‘4K’로 불린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 1972년 서울 청진동 골목에서. 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목포문학관 제공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목포시 용해동의 목포문학관. 고인의 21주기를 맞아 이곳에 그의 업적을 기린 ‘김현관’이 30일 문을 연다. 고인의 전시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개관에 앞서 18일 목포에서 3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형만 시인(목포대 교수)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허 시인은 고인을 “따뜻한 인품과 치열한 문학정신을 동시에 가졌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 정도 이름을 날렸으면 오만해지기 쉬운데 선생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추억했다.
‘김현관’은 178.5m²(54평) 공간에 유품 3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연보와 주요 저서 등을 전시한 ‘김현의 밖’, 책상 타자기 친필 메모와 그림 등으로 꾸민 ‘김현의 안’ 2개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고인이 문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동인지 ‘산문시대’(1962년)와 ‘68문학’(1968년),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계간지 1호(1970년) 등이 전시돼 있다.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거장 비평가’의 인간적인 체취가 가득하다. 특히 1974, 75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유학 시절 보낸 편지에서는 문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청준에게, 하도 시끌시끌하고 그러니 너에게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여기서 보니까, 너하고 최인훈만이 고통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열심히 글 쓰거라.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1975년 2월 17일 이청준에게 보낸 편지)
고인은 마흔여덟 이른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전시관의 벽면에 새겨진 고인의 글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1988년 2월 20일 일기)
30일 개관식에는 김병익 김치수 황동규 황지우 정과리 씨 등 선후배 문인 30여 명이 목포를 찾을 예정이다. 두 번 죽기에는 고인을 추억하고 그리는 사람이 아직 너무나 많다.
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