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클라이네샤이데크∼그린델발트 54km 이틀간 달리다
자전거를 타고 융프라우를 내려오는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송철웅 씨(오른쪽). 사진작가 이정식 씨 제공
융프라우는 관광객으로 늘 붐비지만 올여름에는 몇 가지 이벤트가 겹쳐 한층 들떠 있었다. 스위스 알프스 최고봉인 융프라우 초등 200주년, 인터라켄 관광 개시 100주년에 등반용 로프 공장으로 시작한 스위스 전통의 등반 장비 브랜드 마무트(MAMMUT)가 창업 150주년을 맞아 마무트스포츠그룹이 주최하는 대형 등반 이벤트인 마무트 애니버서리캠프가 열렸기 때문이다.
알프스에서 가장 긴 알레치 빙하의 시발점 융프라우요흐(3454m)에 역사상 가장 많은 150개동의 텐트가 설치됐고 마리아 가브리엘 스위스 경제장관과 극지 거벽 등반의 달인 슈테판 지그리스트(마무트스포츠팀) 등 세계 각국의 등반가, 산악 가이드, 저널리스트 등 300여 명이 초청되어 융프라우 연봉을 등반했다.
묀히 등반대의 일원으로 참가한 필자는 등반 중 봉우리 위에서 만년설의 알프스 연봉과 거대한 빙하, 초록색 카펫을 펼친 듯 아름다운 초원과 소박한 오두막이 점점이 틀어박힌 저지대를 굽어볼 수 있었는데 아이거 북벽에 매달려 있을 때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양한 하이킹 트레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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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업힐은 건너뛰고 스릴 넘치는 다운힐만 즐길 수는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오르는 방법을 택했다.
인터라켄까지는 30km가 넘는 거리여서 가능하면 속도를 내려 했으나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엽서에나 나올 법한 숨 막히는 장면이 펼쳐져 발길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만년설을 뒤집어쓴 채 웅장하게 솟은 산 아래로 빙하가 굽이치고 ‘윈도 바탕화면’ 같은 초원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모습은 말 그대로 목가적이었다. 그 풍경 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기차 차창으로 내다보거나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음향마저 풍경의 일부다. 참새들의 지저귐,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 소의 목에 매달린 트라이셀(스위스 전통 워낭)의 쩔렁이는 소리, 기차가 천천히 지나는 소리, 그리고 가끔 빙하에서 얼음덩이가 무너져 내리며 나는 천둥소리….
호텔, 샬레가 모여 있는 벵겐을 지나자 길은 빙하협곡을 따라 S자로 사행하며 가팔라져 라우터부르넨까지 손아귀가 뻐근할 정도로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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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 북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며 아침햇살에 깨어나는 초원을 맘껏 질주하는 것은 구름을 탄 듯 환상적이었으나 때로 함정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쇠똥. 길가에 지뢰처럼 널린 쇠똥은 흙과 색깔이 흡사해 구별해내기 어려운데 고속 질주 중 밟으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게 된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는다 해도 바퀴에 묻은 걸쭉한 쇠똥 파편이 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순간 최고 시속 40km로 쏟아져 내려가며 행여 올라오는 하이커나 자전거 여행자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지름길을 포기하고 인적이 드문 우회로로 돌아가다 아이거트레일 밑에서 간식을 먹던 중 미국인들로 이뤄진 자전거 투어 팀을 만났다. 유럽 횡단여행을 하던 이들은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거의 그로기 상태. 2km 아래 알피글렌에서 야영 후 오전 7시에 출발했는데 3시간 동안 2마일도 못 올라왔다고 한다.
비록 편법이지만 오르막길을 기차로 생략해버린 잔머리는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틀에 걸쳐 10시간 동안 총 주행거리 54km를 달려본 결과 기차와 자전거를 결합시킨 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융프라우 하이킹 트레일의 속살을 짧은 시간에 온전히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취리히=송철웅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blog.naver.com/timbersmith)
●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융프라우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께 드리는 두 가지 정보. 쇠똥과 함께 조심해야 할 것은 목장 구역에 설치된 철사 울타리다. 철사에는 소들의 월담을 막기 위해 전류가 흐르게 해놓았는데 본의 아니게 확인한 결과 따끔한 전기 맛에 소스라쳤다. 또 산길 곳곳에 ‘Kein Trinkwasser’라고 쓰인 통에 흐르는 샘물은 사람이 아니라 소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그걸 벌컥벌컥 마셔댔는데 ‘먹는 물이 아님’이라는 뜻을 뒤늦게 알고 무식을 탓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