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후 정국 소용돌이
열지도 못한 투표함 24일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해 215만7744표가 담긴 투표함은 열리지도 못했다.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 관할 투표함이 종로구청 개표 장소에 봉인된 채 쌓여 있는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번 주민투표는 복지 포퓰리즘 논란 속에서 가치와 이념 대결로 치달았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지원 범위라는 정책 이슈에 시장직까지 연계하면서 이번 주민투표가 정책투표에서 오 시장에 대한 신임투표로 변질된 측면도 있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개발을 벤치마킹한 듯한 광화문광장 조성과 ‘세빛둥둥섬’ 등 서울 디자인 사업을 벌여온 오 시장 개인의 시정 운영 방식에 대한 호불호가 이번 주민투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쨌든 결과는 ‘무상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야권의 승리이자 보편적 복지의 승리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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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각자 유리한 해석을 내놓으며 향후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복지 논쟁에서 일단 우세를 점한 민주당 등 야권은 이 기세를 내년 총선, 대선까지 이어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복지 이슈는 이제 ‘대세’가 됐다. 민주당이 준비한 ‘무상 시리즈’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향후 복지정책의 방향을 놓고 치열한 내부 논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무상 복지=포퓰리즘’이라는 보수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전면적인 노선 전환을 모색할지 주목된다. 주민투표를 줄곧 반대해 온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은 “이제부터 한나라당과 여권의 복지정책을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주민투표로 오 시장이 시장직에서 물러나고 보궐선거로 새 시장을 뽑아야 하는 만큼 내년 총선과 대선 판 자체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악화된 민심으로 내년 총선 ‘포비아’(공포)에 떨고 있던 한나라당 서울지역 의원들은 총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서울시장을 야권에 뺏길 경우 낙선 공포가 더욱 현실화될 수 있다며 걱정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번 기회에 2002년 이후 한나라당에 내줬던 서울시를 되찾고 내년 총선에서 서울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박근혜 대세론’으로 진행되던 내년 대선 레이스에도 지금과는 다른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 정국에서 내내 적극적이지 않았던 박 전 한나라당 대표도 당초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했던 대선 주자로서의 본격 활동 시점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번 주민투표로 야권의 대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지금처럼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 전 대표라는 ‘여권 구원투수’의 등판 시기가 당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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