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물을 자주 마셔도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무거웠다. 가끔은 머리가 터질 듯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결국 직장인 윤성원(가명·42) 씨는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가 의사로부터 받은 진단은 ‘화병(火病)’. 화병이라는 병명을 처음 받고 윤 씨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의사의 표정은 의외로 심각했다. 의사는 “앞으로 화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심각한 합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했다.
○ 화병? 명상으로 말끔하게
윤 씨의 사례가 특별한 경우일까. 대답은 ‘No’. 의외로 우리 주변엔 화병 환자가 많다. 또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1995년 미국정신학회에선 화병을 분노를 억제해서 생기는 ‘분노증후군’으로 설명하며 한국식 발음 그대로 ‘hwa-byung’으로 표기했다. 화병 환자가 전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많다는 게 이유였다.
‘국민 질환’ 화병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병원에선 약물, 침, 명상요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화병을 치료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으로 꼽히는 방법은 명상. 의사들은 “명상이 화병 치료는 물론이고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화병 외에도 고혈압과 심근경색, 암 등 많은 질병이 스트레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명상은 탁월한 스트레스 해소 및 건강 증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상치료는 1979년경 미국 매사추세츠 의료원에 처음 보급된 뒤 2000년대 들어 미국 캐나다 등에서만 수백 개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명상치료는 한의학 등과 결합해 급속도로 의학적인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장 소장에 따르면 깊은 명상은 뇌 속에 일산화질소(NO)를 분출해 미세혈관을 확장하고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또 신경전달물질의 방출을 촉진해 감정상태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통 사람이 불안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는 뇌의 우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밝고 낙천적인 감정을 느낄 땐 좌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성이 높아진다. 미국 위스콘신대가 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명상을 꾸준히 하면 좌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우세해져 부정적 정서가 긍정적으로 바뀐다.
명상은 뇌를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김종우 강동 경희대한방병원 교수는 “명상은 뇌를 이완시켜준다. 또 뇌에 산소를 풍부하게 공급하고 뇌파 속도도 느리게 만들어 안정을 가져온다. 따라서 명상을 하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명상은 호르몬과 자율신경에도 영향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병원의 존 카밧진 교수에 따르면 명상은 자율신경에도 영향을 끼친다. 현대인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뤄진 자율신경 가운데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활성산소(생체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손상하는 유해 산소)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발생해 스트레스지수가 높다. 또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카밧진 교수는 명상이 자율신경을 조절해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한 명상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암 등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보완요법으로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명상은 수면보다도 몇 배 강한 휴식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호흡을 깊고 고르게 안정시키고 맥박과 혈압을 떨어뜨려 순환계 전체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또 명상은 몸 전체의 근육을 이완하며 뇌에 산소를 공급해 일과 공부에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뇌 활동이 촉진돼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김종우 교수는 “국내에서도 명상클리닉을 운영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선 명상강좌가 인기를 끌고 대학에선 명상수업까지 생겼다. 명상은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최선’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