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우=이헌진 특파원
중국 고속철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났지만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중국인들의 분노가 사그라지기는커녕 공산당 지도부가 직접 나서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가 일당독재 통제사회인 중국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급격히 키우는 전환점이 되는 분위기다.
베이징(北京)대 법대 허웨이팡(賀衛方) 교수는 26일 시나닷컴의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 전국인대가 직접 사고 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무원 산하 철도부 전문가들이 특별조사팀에 포함되면서 공정한 조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관련 헌법 조항과 전국인대 의사규정 등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또 이 규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으나 한번도 발효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 글은 팔로어 17만 명에게 전파됐고 하루 만에 약 2만2000명이 퍼 날랐다. 징지관차(經濟觀察)보 등 20여 개 언론도 허 교수의 주장을 게재했다. 차이징(財經)망도 자체 개설한 웨이보에 비슷한 글을 올렸으며 팔로어 70만 명에게 전해졌다.
○ 국면 전환하려는 당국
중국 주요 관영 언론들은 27일 사건 관련 보도를 크게 줄였다. 비판보다는 미담, 그리고 유언비어에 대한 해명 위주로 기사를 보냈다. 이날 오전 저장(浙江) 성 원저우(溫州) 시 외곽 사고현장에서는 사고 수습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늪지대 인근인 사고현장에서 굴착기 3대가 파낸 검은 흙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가장 많은 부상자가 옮겨졌던 캉닝(康寧) 종합병원도 한적했다.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운 병원이다 보니 64명이 옮겨져 북새통을 이뤘으나 숨지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들, 귀가한 사람을 빼면 12명만 남았다고 왕롄웨(王蓮月·여) 원장이 전했다.
사망자 39명을 안치한 원저우 장례식장은 이날 처음으로 시신 2구를 화장했다. 유족들이 모두 시위를 하러 떠나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다. 장례식장 직원들만이 퀭한 눈으로 오갔다.
○ 진실규명 포기하지 않는 유가족들
“숨진 이들에게 존엄을 돌려 달라.”
27일 오후 12시 반 원저우 남역. 새로 지은 현대식 고속철 전용 역사 안에서 30명 안팎의 사고 희생자 유가족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누나를 잃었다는 한 젊은 남성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며 “보상에 빨리 응하는 유가족에게 수만 위안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는데 돈으로 사건의 진상을 덮겠다는 게 국가가 하는 배상인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TV와 신문에서 많은 중국 지도자가 관심을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찾아와 위로한 이는 없다”며 “이곳에서 시위를 벌인 지 3시간이 넘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며 한목소리로 분노했다.
원저우=이헌진 특파원
원저우=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