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구 도쿄 특파원
일본 민주당 정권이 최근 굴욕을 당했다. 근본 원인은 역시 세금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온갖 장밋빛 공약으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반세기 만의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중학생까지 1인당 월 2만6000엔의 아동수당 지급, 고속도로 무료화, 개별농가 소득보전, 휘발유 부가세 폐지, 월 7만 엔 최저연금 지급 등을 약속했으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 공약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연간 12조 엔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최근 “안일하게 공약을 만들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간사장은 “다음 선거에선 정책 우선순위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충실한 공약을 내놓겠다”는 사죄문을 야당에 제출했다. ‘거짓 공약’으로 선거에서 이겼으니 억울하게 패한 야당에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9년 정권을 빼앗겼던 자민당은 즉각 “주요 공약을 철회한다면 국민의 신임을 다시 물어야 한다”며 국회해산 및 총선거를 요구했다. 이제까지 야당의 정권퇴진 요구는 다분히 정치색이 짙었으나, 민주당 정권의 ‘공약 포기’를 계기로 정책적인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은 그동안 극심한 지지율 하락에도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2013년 8월까지 공약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버텼지만, 이제는 정권을 계속 잡고 있을 논리가 궁색해졌다. 이것 말고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복구를 위해선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그러자면 총선을 통해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던 여론도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엔 ‘기꺼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지만, 실제로 소비세를 올리려면 총선을 거쳐야 한다는 데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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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