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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살집 찾는 일본인

입력 | 2011-07-17 17:28:53


5월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W공인중개사무소에 40대 여성이 들어섰다. 일본 센다이(仙台)에 사는 재일교포인 그녀는 일본어를 섞어가며 서툰 우리말로 "집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며칠 간 해운대 주변일대를 둘러본 그녀는 우동 센텀시티에 있는 고급 주거용 오피스텔 1실을 9억4000만 원에 사들였다. 이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일하는 서모 씨는 "올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일본인이 10여 명이 넘는다"며 "주변 다른 사무실에도 일본인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 중동에서 7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이강석 소장도 "그동안 한 명도 없었던 일본인이 대지진 이후 10팀 이상 찾아왔다"며 "모두 투자목적보다는 살 집을 찾았다"고 말했다.

대지진 이후 부산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려는 일본인과 재일교포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김해공항을 통하면 왕래가 편하다는 매력이 지진 공포에서 벗어날 '안전가옥'을 찾던 일본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 살집을 찾는 일본인들

센텀시티에 있는 고급 주거용 오피스텔 'WBC 더 팰리스'의 분양을 담당하는 정병석 솔로몬 그룹 마케팅 본부장은 "최근 일본 투자자 8팀이 방문했는데 물건이 모두 팔려, 내국인 소유주들에게 물건을 전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센텀시티 인근 마린시티에서 분양 중인 고급 오피스텔 '더 샵 아델리스'에는 최근 일본 투자자 12명이 방문했고, 4건의 계약이 성사됐다. 한국인 사위의 소개로 방문했다는 한 일본 고객은 "가족들이 같이 모여 살기 위해 15억 원대의 오피스텔 3실을 한꺼번에 살 예정"이라며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과시했다. '월드마크' 공인중개소 박정빈 소장은 "동일본 대지진 이전에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법인이 주재원을 위해 임대 물건을 묻는 사례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개인이 찾아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부모 중 한 명 또는 친척이 한국인이거나 재일교포여서 한국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사례가 많지만 순수 일본인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인 수요자들이 주택을 고를 때 안전성에 큰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해운대구에서 주택을 둘러본 일본인들은 대체로 "쓰나미로부터 안전하겠는가, 태풍이 불면 해안가 어디까지 물이 넘치느냐" 등을 주로 질문했다. 정 회장은 "대지진 피해가 컸던 일본 동북부지역 거주자들은 바닷가에 접한 해운대보다 내륙에 위치한 동래지역을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일본에서 국내로 이주하는 건수도 부쩍 늘고 있다. 부산 용당세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국내로 이사한 건수는 모두 86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658건)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일본 발 부산 부동산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

업계는 일본 발 부동산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동에 지어지는 고급 주상복합 '두산위브 더 제니스'의 시행사인 '대원플러스건설'의 탁종영 이사는 "최근 일본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면서 마린시티 내 주상복합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는 일주일에 평균 2팀 정도의 일본인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며 "일본 투자자들은 통상 시장조사에 2~6개월 정도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지만 거래물건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지진 이후 나타난 전력난과 엔고(円高)를 견디다 못한 일본기업과 일본에 진출했던 글로벌기업들도 잇따라 부산과 경남지역으로 생산 및 연구거점을 옮기고 있어 일본 발(發) 부산지역 부동산 '입질'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업계에서는 "1592년 임진년에는 일본인들이 '칼'을 앞세웠다면 420년 후인 2012년 임진년에는 '돈'을 내세워 부산지역을 공습할 것"이라는 우스개 섞인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부산=이건혁기자 reali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