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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잔디는 맛있었다

입력 | 2011-07-05 03:00:00

“왜 먹었는지 몰라… 동물이 된 기분”
유머-위트 즐기는 낙천적 성격 “슬로 플레이” 비난도 대범하게 넘겨




승리의 환희에 대자로 코트에 드러누웠던 그는 쪼그려 앉아 뭔가를 뜯어 먹었다. 입 안에는 윔블던 코트의 푸른 잔디가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우승 세리머니의 주인공은 노바크 조코비치(24·세르비아)였다. 세계 2위 조코비치가 4일 영국 런던 인근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3-1로 꺾은 직후였다. 그를 응원하러 코트를 찾은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비롯한 관중 1만5000명은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윔블던 우승을 이룬 흥분에서였을까. 이색적인 장면에 대한 해석이 쏟아졌다. 한 국내 누리꾼은 “조코비치가 토끼띠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했다. 한 외신은 “잔디 코트였기 망정이지 프랑스오픈의 클레이 코트였다면 흙을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정작 조코비치는 “왜 잔디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기쁨에 겨워 즉흥적으로 나왔다.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생각보다 잔디 맛이 좋았다”고 웃었다.

조코비치는 평소 뛰어난 유머 감각과 위트로 유명했다. 동료 선수들의 특이한 제스처를 따라해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았다.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 나달, 앤디 로딕(미국) 등의 유별난 동작이 단골 메뉴.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열린 로딕과의 시범경기에서도 특유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누굴 놀릴 목적은 아니다. 흉내 내기는 긍정의 효과를 준다”고 말했다.

외향적인 성격에 농담을 즐기는 그는 힘겨운 유년기를 보냈다. 내전에 시달리던 고국 세르비아에서 허구한 날 공습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스키 선수 출신 아버지는 아들이 스키나 축구하기를 바랐지만 4세 때 처음 라켓을 잡은 조코비치는 테니스에 더 재능을 보였다. 열악한 환경에 물 뺀 수영장에서 공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낙관적인 태도로 이겨냈다.

조코비치는 지나친 슬로 플레이라는 비난에도 휩싸였다. 윔블던 결승에서 서브에 앞서 코트에 공을 튀기는 횟수를 세보니 10번을 넘기도 했다. 골프에서 지나친 왜글(손목을 풀어주는 동작)처럼 상대 선수의 진을 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경기 흐름을 유지하며 서브 하나에도 총력을 다할 의도이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등극과 윔블던 우승의 두 가지 목표를 연이어 처음으로 이룬 조코비치는 올 시즌 48승 1패의 눈부신 승률을 앞세워 8번 우승하는 최고의 한 해를 맞았다. 프랑스오픈 준결승에서 로저 페데러(스위스)에게 당한 게 유일한 패배. 하지만 최근 들어 페데러의 쇠락세가 뚜렷한 가운데 조코비치는 나달과 치열한 테니스 황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조코비치가 올해 나달과의 상대 전적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한 걸 보면 그의 시대가 머잖은 듯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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