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최인호 지음/391쪽·1만2800원·여백미디어
투병 중 글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하는 대목이 먼저 눈에 띈다. 그는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손톱이 빠졌다.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와 손가락에 끼우고 집필했다”고 밝혔다.
최 씨가 50년 동안 쓴 소설 중 상당수는 역사소설, 대하소설, 종교소설이다. 또 그 작품들의 대부분은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었다. 그는 “이 소설은 청탁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동안 마라톤 선수처럼 호흡이 긴 문장 스타일이 몸에 뱄다면서 암에 걸린 덕분에 자연스럽게 ‘장거리 주법’을 버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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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씨가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육필 원고. 여백미디어 제공
암과 싸우면서 5년 만에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최인호 씨. 여백미디어 제공
작품의 K처럼 최 씨 역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 배경은 역시 암 투병이라는 현실일 것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의상이며, 우상이며, 성 바오로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幻花)임을 깨우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 주신다면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고 다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