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은 이곳 캠퍼스에서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요즘 한창 ‘공사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실험실과 연구실이 부족하고, 학생들은 도서관과 학생회관이 더 필요하다. 식당이나 주차공간 또한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다 보니, 대학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한반도가 늘 그렇듯.
그나마 건물 지을 예산이 있는 대학은 행복한 편이라고들 하지만, 새로 지어진 대학 건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잔디밭이나 운동장에 건물이 폭력적으로 들어서는가 하면,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지어진 ‘생뚱맞은 건물’이 캠퍼스 경관을 훼손하기도 한다. 무분별하게 신축된 건물들을 볼 때면, 이 대학은 ‘캠퍼스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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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물 허물고 ‘생뚱맞은 건물’
우리는 전통의 소중함을 목청 높여 강조하면서도 ‘보전’하는 데는 늘 소홀하다. 대학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인물들을 배출하고 그들의 꿈이 처음 싹튼 곳이다. 그들이 공부하고 토론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기에 대학 캠퍼스는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학교는 옛 건물을 부수고 옛 흔적을 지우는 데 바쁘고, 그들의 흔적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후배들은 선배의 흔적에서 제 삶의 지표를 찾는데도 말이다.
존 케인스 교수가 사용했던 케임브리지대 연구실, 리처드 파인먼이 강의를 했던 칼텍의 강의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사용했던 고등학술연구소의 연구실에서 후학들이 ‘석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잘 보존하듯이, 우리나라도 위대한 과학자, 뛰어난 소설가, 존경받는 석학의 흔적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고 싶다.
다른 나라의 대학들은 옛 건물들의 외형은 시간의 흔적 그대로 남겨둔 채 편의시설만 확충하는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허물고 새로 짓는 작업에 익숙하다 보니, 속성개발주의로 발전해온 한반도의 역사가 캠퍼스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를 보면 ‘누더기’ 우리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에서 가장 가슴 아픈 공간은 ‘도서관’이다. 젊은이들에게 학문적 열정을 불어넣어야 할 대학의 도서관이 독서실로 전락한 현실은 이 땅에 자리한 대학의 존재이유를 회의하게 만든다. 굳이 유럽이나 미국의 명문대학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도서관이 학생들을 얼마나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지는 그 도서관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여놓아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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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흔적이 캠퍼스의 유산
진심으로 바라건대, 우리나라 대학에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도서관이 ‘고귀한 책들로 무장한 고독과 비밀의 공간’이 되어, 누구나 들어서면 지적 열망에 사로잡혀 ‘삶의 탐구자’가 되는 공간을 우리 대학 캠퍼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고전’이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것, 즉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Classic is timeless!). 나는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가 100년이 지난 후에도 조악하지 않고 ‘여전히 근사한’ 건물들로 가득 차길 바란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캠퍼스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공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길 진심으로 꿈꾼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