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앞에서 6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지훈(가명) 씨.
뇌병변 1급인 이지훈(가명·28) 씨는 당시 김 선수가 앉은 테이블 뒤편에서 휠체어를 탄 채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를 들었다. 이 대통령은 그날 “장애와 가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대학생”이라며 그에게 ‘대한민국 인재상’ 표창장을 줬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이 씨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가 탄 휠체어 아래에는 끼니를 때운 삼각김밥 포장지가 널려 있었다. 그는 13일부터 그곳에서 6일째 ‘노숙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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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재상 수상 이듬해 대학 총장상을 받고 대구 계명문화대 실용음악과(작곡과)를 졸업했다. 이 씨는 훌륭한 작곡가가 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위한 노래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이 씨가 살던 경북지역 장애인 시설에서는 “기술을 배워 취업하라”며 음악가의 꿈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자신이 만든 노래로 함께 무대에 설 밴드를 꾸리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할 때면 담당 복지사는 “음악으론 취업이 안 되고 자립도 못한다”며 타박하기 일쑤였다. 그는 “지금 사는 시설에서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복지사들이 혼을 내고 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복지사는 기자에게 ‘몸싸움’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이 씨는 2009년 4월 시설을 나와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처음에는 받은 상금으로 모텔 생활을 했지만 돈이 떨어지자 서울의 한 장애인 재활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곳도 서울에 있는 시설에 거주했던 사람만 입소할 수 있다는 규정때문에 들어가 살 수 없었다. 장애인용 임대아파트 입주도 문의했지만 부양가족이 없고 서울 거주 기간도 짧은 그에겐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부모님은 살아계시지만 장애인이라 그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이 씨가 15세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장애인 시설에서 자란 것도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이었다. 결국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이 씨는 임대아파트를 분양하는 SH공사 본사를 찾았다.
그는 장애로 뒤엉킨 팔다리를 휘저으며 “이게 최선은 아니겠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며 “나에게도 살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월세 10만 원 안팎의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 하나 얻는 게 소원”이라며 “잘 곳이라도 있어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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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