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대선후보-당총재직 거래 각서, DJ가 먼저 제안”
김대중-이철승의 각서 19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이철승 후보가 교환한 각서. 김 후보는 자기 명함에 “십일월 정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은 이철승 동지 중심으로 편성한다. 후보 당수(이철승)는 분리한다”고 썼다. 별도의 종이엔 “금차 신민당 대통령후보에는 김대중 의원을 추천하고(지지하고) 금년 십일월 정기 전당대회에서는 이철승씨를 당수로 지지하기로 서로 합의 각서를 교환함”이라고 쓰고 그 아래 김 후보 측의 ‘김대중, 조영규’, 이 후보 측의 ‘조연하, 한영수’가 서명했다. 이철승 씨 제공
그러나 DJ의 주장은 두 군데에서 분명히 잘못됐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준섭 전 의원은 이철승계 표가 필요했던 DJ가 먼저 제안해 각서를 써줬다고 ‘월간 헌정’ 2002년 12월호에서 밝혔다. 또 나는 1976년 9월과 1979년 5월 전당대회에서 총재 경선에 출마했다. 1976년에는 김영삼(YS)을 누르고 당선됐지만 1979년 전당대회에서는 당시 연금 상태에 있던 DJ가 YS를 적극 지지하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했다. 두 번에 걸친 총재 경선에서 DJ는 나를 지지하기는커녕 나의 총재 당선을 방해했다. 훗날 1985년 2·12 총선 이후 동교동으로 DJ를 방문했을 때 DJ는 “사실 나는 이 의원께 감사한 면도 있고 미안한 면도 있다”고 이런 사실을 사과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나는 “대통령께서는 김대중 씨가 무서워서 피하십니까”라며 DJ의 석방을 건의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그 사람(DJ)은 무책임한 선동선전의 화신 아닙니까”라며 “김대중 씨에 관해 이 당수께서 보장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즉시 “내가 보장하겠습니다. 김대중 씨를 내 주십시오”라고 재차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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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탁학생대회 개회사 1946년 1월 이철승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고려대 정치학과)이 반탁학생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철승 씨 제공
YS가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이 된 뒤 한때 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는 YS의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인 김윤도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YS에게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소석(이철승의 아호)을 국무총리나 안기부장을 시켜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YS는 며칠 뒤 김 변호사에게 “소석을 시키자는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단다. 참모들과 상의한 결과 나를 다룰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YS는 취임 이래 접촉이 없었는데 (1997년) 한보사건으로 정신이 없을 때 갑자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YS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한보사건에 내 아들 현철이가 관련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위정자는 불고가사(不顧家事·집안일을 돌보지 아니함)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입장을 취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오”라고 위로했다. 그 무렵 YS는 아들 문제로 상당히 괴로워했고 그것 때문에 국정수행 의욕을 상당히 상실한 것으로 보였다.
▼ 안보외교 나선 야당당수 ▼
유진산 집에 모인 40대 기수들 1970년 전후 ‘40대 기수론’이 정국을 휩쓸 당시 40대 정치인 등이 신민당 유진산 당수의 집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영삼 조영규 고흥문 서범석 김대중 이철승 홍익표 씨. 이철승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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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순방외교는 당내의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박 대통령의 (감사) 친서까지 받으면서 비난을 받았지만 1977년 5월 24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특사일행이 한국 정부와 철군 문제를 협의하는 성과를 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정계은퇴 이후 ▼
수잰 숄티와 함께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이 2008년 10월 북한 인권운동가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에게 제9회 서울평화상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 씨가 법정에서 진술한 대로 나는 황 씨의 방미를 위해 노력했다. 2001년 7월 5일 나는 공개적으로 ‘황 씨의 방미를 즉각 허용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나는 일개 야인으로 건국 전야 좌익과 투쟁하듯 황장엽 씨를 가운데 놓고 DJ와 끈질기게 싸웠다.
2008년 4월 나는 헌정회 회원들과 동해안 고성군 일대 격전지로 시찰을 나갔다. 마침 국부(國父) 이승만 대통령의 쓰러져가는 목조로 된 별장을 지나치게 됐다. 거기서 3km가량 떨어진 곳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김일성 별장은) 더욱 현대식으로 좋게 치장해 놓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별장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이었다. DJ와 김정일, 그리고 노무현과 김정일이 서로 얼싸안고 있는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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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