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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진]‘등록금 예고제’로 대학 등록금 갈등 풀자

입력 | 2011-05-03 03:00:00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백화점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점원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할인 대상 품목이 아닌데 실수로 할인해 주었으니 다시 매장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만약 이미 산 것이니 환불은 안 되고 돈을 더 내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등록금 인상 이야기다. 백화점 물건은 환불하거나 딴 곳에서 사면 그만이지만 대학은 맘대로 옮길 수 없으므로 학생들은 꼼짝 없이 인상된 등록금을 수용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수업 거부와 시위 등 소위 ‘개나리 투쟁’이 연례행사가 됐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부 대학은 신입생 등록금만 인상했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은 재학생은 물론이고 신입생에게도 황당한 소식이다. 대학이 등록금을 신입생에게 알려주는 것은 대학 지원 시점이 아니라 입학이 확정된 2월이기 때문이다. 전년도 등록금 알면 되지 않느냐고? 학생들은 인상률 때문에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다.

등록금 갈등의 본질은 대학과 학생 간에 등록금에 대한 ‘약속’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 편입 기회가 제한돼 있으므로 신입생은 등록과 함께 졸업까지의 교육서비스를 구매한 것과 다름없다. 거래란 팔 사람과 살 사람이 상품의 내용과 가격에 합의해야 성사되는 법이다. 상인이 물건을 팔아 놓고 나중에 돈을 더 달라고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등록금 인상은 교육서비스를 팔아 놓고 나중에 돈을 더 달라는 것과 같다. 학생은 교육 대상이기도 하지만 고객이기도 하다.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등록금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

각 대학은 매년 수시 모집 시점에서 신입생의 등록금은 물론이고 졸업 시까지 부담해야 할 등록금과 장학금 계획을 고지해야 한다. X대학에서 Y학위를 따는 데 Z만 원이 든다는 것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는 과거 등록금 예고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바 있다. 2008년에는 국회 민생안정특별위원회가 이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누구도 반기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대학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경영상 속박을 받고 싶지 않아 반대했고, 일부 대학생들은 인상 빌미를 제공한다며 반대했다. 또 일부는 투쟁거리가 없어진다고 반대하였다.

진화된 등록금 예고제가 필요하다. 먼저 각 대학은 등록금 액수를 제시하기보다는 물가상승률 연동제를 채택해야 한다. 2012년에는 2011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50%, 2013년에는 2012년 물가상승률의 100%만큼 인상한다는 식이다. 4년간의 등록금 총액을 제시하는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나중에 물가상승률 예측이 잘못됐다는 논쟁의 불씨를 남기는 문제가 있다.

또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매년 신입생마다 등록금 인상률 계획이 달라져야 한다. 즉, 학번마다 그해 인상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4년 동안 대학 재정의 유연성이 묶여 과도 또는 과소 인상률로 본의 아니게 학생이나 대학 중 일방이 손해를 보게 된다. 그 위험을 줄이려면 매년 신입생에게 새로운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학년마다 인상률이 다르더라도 대학 지원 때 알고 선택한 것이므로 학생이 수용해야 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사는 시점에 따라 가격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도 매년 손질한다.

등록금 예고제는 복학생을 위해 좀 더 장기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등록금과 함께 학생들의 부담을 결정하는 장학금도 예고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학생들도 대학 이름만 보고 지원할 것이 아니라 가격도 참고해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 간 담합을 철저히 단속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해법은 학교와 학생이 약속을 하고 이를 준수하는 데 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