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숨겨진 궁가 이야기/이순자 지음/376쪽·1만3000원·평단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의문을 가진 자에게 발견되기 마련. 서울시문화관광해설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뒤늦게 역사공부를 시작해 서울 사대문 안에 있던 궁가 26곳의 역사를 좇아 책으로 펴냈다. ‘조선의 왕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은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소박한 질문을 타임머신 삼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했다.
한양은 조선의 도읍이 되면서 왕과 왕족, 사대부, 관료, 백성들이 개성에서 대거 이동해 왔다. 왕이 거처할 궁궐이 세워지고 왕족과 관리들은 하사 받은 땅에 거처를 마련했다.
신분과 서열에 대한 구분이 엄격했던 영향으로 왕을 낳은 후궁은 죽은 후에 그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했다.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던 왕자가 왕이 된 경우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왕의 부모를 모시는 사당을 역시 ‘궁’으로 불렀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사당 도정궁,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 등이 있다.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자나 공주, 옹주가 살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용둥궁, 계동궁, 사동궁, 소공주궁, 창성궁, 죽동궁 등이다.
궁가의 규모는 국가가 정했고,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그 수가 많아졌다. 궁가는 당시로서는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궁가의 이름이 그 일대의 지명으로 쓰이기도 했다. 소공주궁이 있던 곳이 소공동, 창성궁이 있던 지역이 창성동으로 불렸다.
궁가의 역사를 좇으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조선 왕실 가족사를 훑었다. 그러나 궁가는 일제가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또 고종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공공건물이나 주택, 고층건물이 들어서 흔적조차 알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대빈궁길’이 ‘삼일대로26’과 같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길 이름으로나마 남아 있던 궁가의 흔적도 사라졌다”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영원히 사라질까봐 현재 위치라도 알리자는 심정으로 추적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