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엄청 못사시든지, 아주 잘사시든지….”
노인 환자의 지불 능력이 없어 보일 때 의료진이 이런 말을 되뇐다고 한다. 극빈자라면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할 터이고, 부유층이라면 진료비 걱정이 없다는 얘기다.
양극화로 가족의 유대관계는 느슨해졌고 자식의 부양의무도 예전 같지 않다. 병들기 전에 재산을 자식에게 나눠주고 여생을 보내는 노인 환자들은 팍팍한 생활에 가족 눈치를 볼 정도다.
부양의무가 전반적으로 느슨해질 무렵 정부는 대안 하나를 내놓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이 보험이 노인 진료비를 지원하며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한 점에선 ‘참 좋은 제도’였다.
그런데 이 보험은 노인 치료의 책임이 가족에서 국가로 온전히 넘어갔다는 환상과 함께 가족의 기대 수준을 어마어마하게 높여 놓았다. 노인을 모시던 많은 자식들은 ‘이제는 국가가 병든 부모를 맡아주겠지’ 하며 안도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수많은 노인이 제도권 밖으로 내몰렸다. 제도를 이용한다고 해도 간병비와 본인부담금이 월 50만 원을 웃도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기대만 잔뜩 부풀렸다는 면에서 이 보험은 ‘참 나쁜 제도’이기도 했다.
국가와 가족이 서로 ‘나 몰라라’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급성 질환에 걸린 일부 환자는 쓸쓸히 숨지기도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다가 폐결핵에 걸렸던 김 할머니(78)도 그래서 길거리에서 숨졌다. 김 할머니는 연락 없이 사는 자식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돼 있었다. 하지만 본인부담금을 낼 돈이 없어 무료 치료기관을 애타게 찾다가 숨졌다. 병원이나 주민센터는 “제도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다”며 발을 뺐다고 한다.
자식을 둔 저소득층 노인의 본인부담금과 의료지원금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덫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다. 자식의 월 소득이 187만 원(4인 가족 중소도시 거주 기준)을 넘으면 그 부모는 가족관계가 사실상 끊어져도 국가에서 생계비나 의료비를 지원받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현금이 없는 노인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빠진다. 홀몸노인 100만 명 이상이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가족의 책임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국가가 급성질환에 걸린 노인환자들을 찾아 응급 진료를 해주는 것이 더 절실해 보인다. 옛날 기준에 얽매여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제도를 두고 복지선진국을 논할 순 없지 않은가.
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