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신념으로 과학기술처를 발족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했다. 연구원들이 공무원 신분일 경우 국적 및 처우 면에서 규제가 따르기 때문에 KIST를 정부조직이 아닌 재단법인 형태의 출연연구소로 만들어 탄력적이고 유연한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유능한 해외 인재를 초빙해 파격적인 보수와 최고 수준의 주거시설 등 연구 여건을 구축함으로써 과학기술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박 대통령은 KIST를 자주 방문해 밤샘 연구를 하는 과학기술자들을 격려했다. 연구에 부족함이 없도록 예산을 배정하고 소장을 장기간 재임시켜 안정적 연구체제가 정착하도록 배려했다.
‘첨단과학 결정체’ 원전과 T-50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과학기술 육성에 관한 신념, 미래에 대비하는 과감한 투자 및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대한민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과학기술인들은 박 대통령을 ‘과학기술 대통령’으로 회고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과학기술 투자를 급속도로 확대하고, 과학기술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 기반을 다지기 위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추진해 과학기술 중흥을 이룩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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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전체 예산 중 5%에 달하는 15조 원이 연구개발 예산으로 책정됐는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 결코 작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과학기술 투자는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는 대부분이 출연연구소와 대학에 집중되고 있지만 출연연구소와 대학의 혁신과 변화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는 기업에 비해 뒤떨어지는 감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이었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오늘날 과학기술계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와 혁신은 경쟁과 고통 수반
세계적인 화두인 자원, 에너지, 환경 및 고령화 문제 등은 창의적인 원천기술에 기반을 둔 융합기술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던 연구개발 체제에서 벗어나 세계를 이끌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융합과 세계화 추세에 대응하는 출연연구소 체제를 정립하고 대학의 역할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은 경쟁을 수반하며 매우 고통스럽고 어렵다. 최근의 KAIST 사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도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성찰을 통해 노벨상에 도전하고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정부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정치적 고려보다는 전문성에 입각해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선정하고 참신한 인재를 중용함으로써 과학기술 르네상스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