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벌.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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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만발했는데 토종벌이 없어 올해 때깔 좋은 복숭아, 단감을 수확할 수 있을지…"
과수 농가들이 지난해부터 꿀벌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돌면서 토종벌이 대량 폐사하자 근심에 잠겼다. 한봉(韓蜂) 주산지인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 경남 함양군 등 지리산권역 7개 시·군 과수 농가들은 걱정이 더 크다. 토종벌이 대신 양봉(養蜂)이나 수정벌이 자리했지만 우려가 앞선다. 과수원들은 토종벌 폐사로 착과율이 10~30% 정도 감소하는 2차 피해가 현실화되자 꽃가루 수집·전파 전쟁을 벌이고 있다.
● 토종벌 폐사 2차 피해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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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등면 농가 130여 곳은 복숭아 20여 품종을 100㏊(약 30만평)을 재배하고 있다. 절반을 차지하는 천중도 백도 등 10개 품종은 꽃가루가 없어 벌들이 와야 한다. 농민들은 최근 양봉 벌통 50개를 돈을 주고 빌렸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수(手) 작업에 나서고 있다.
전국 복숭아 재배면적은 1만 3000㏊(약 4000만평)이다. 그동안 시설하우스 복숭아는 인공수분이 이뤄졌지만 노지재배는 수작업(인공수분)이 드물었다. 김혜령 순천시 농업기술센터 과수담당은 "지난해 토종벌 폐사와 냉해가 겹쳐 꽃가루가 없는 복숭아 품종은 과수에 열매가 열리는 비율인 착과율이 30% 정도 감소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순천시는 과일 생산량보다 모양이나 맛이 좋은 고품질 과일 생산에 영향을 주는 착과율이 감소하자 인공수분 면적을 배, 단감, 복숭아, 참다래 등 4개 작목 116㏊로 확대키로 했다. 전남 나주시 배 밭이나 전남 광양 매실 밭에서는 토종벌 폐사로 착과율이 10~20%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꽃가루 옮기는 인공수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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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지역 사과농가 110곳이 참여하는 지리산 반달곰 사과연합회도 토종벌을 대신할 인공수분 매개체 확보를 걱정하고 있다. 정진수 씨(56)는 "조만간 양봉을 통 당 6만원에 빌려 나눠줄 계획이지만 뭔가 시원치 않다"고 걱정했다.
박준규 청도복숭아명품화연구회장(40)은 "지난해 토종벌이 많이 폐사한데다 곤충수도 줄어 복숭아 농가 중 20~30%가 인공수분을 못했는데 올해도 악순환이 재현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 구멍 뚫린 방역 수년간 괴질 지속
농림수산식품부나 한국토봉협회, 전문가들은 토종벌이 괴질에 폐사·감염된 비율이나 생태계 영향에 대해 분석을 각자 달리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경 전국 토봉농가 1만 7000곳 가운데 1만 2000곳(68.2%)에서 키우는 토종벌 41만 3000통 중 31만 7000통(76.7%)이 피해를 입었다고 분석한다. 한국토봉협회는 토종벌 95%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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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전국적으로 한봉 12곳·양봉 2곳 등 농가 14곳에서 낭충봉아부패병이 발생해 주의보가 내려졌다. 날씨가 따듯해져 다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농가들은 신고를 기피하고 있다. 이 질병이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됐으나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신고를 꺼려 방역에도 구멍이 뚫린 셈이다. 38년째 벌을 키우고 있는 이태식 씨(61·충남 청양군)는 "정부가 실질적인 피해 지원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hoi@donga.com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