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케의 正義는 ‘약자의 승리’가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송석구)와 동아일보가 ‘함께 찾는 공정사회의 조건과 과제’를 대주제로 연속 세미나를 시작했다.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공정’과 ‘정의’의 한국적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고 그 실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1차 세미나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적 공정사회론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열렸다. 앞으로 2차 ‘공정한 한국경제를 위하여’(6월), 3차 ‘공정한 사회의 국가와 정치’(9월), 4차 ‘미디어와 공정성 지표’(11월) 순으로 진행된다. 》
‘함께 찾는 공정사회의 조건과 과제’ 제1차 세미나가 15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적 공정사회론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열렸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공정과 정의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정부와 국가에서 시작된 논의가 이제 겨우 지식인사회에서 거론될 뿐 시민사회는 아직 참여도 못하고 있다. 논의 방식에 대한 평가보다 논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이다.”(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이날 세미나는 공정과 정의를 주창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 올바른 논의 전개 방식, 과도한 공정 담론의 부작용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참석자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압축 성장이 빚어낸 불공정과 부조리가 최근 불고 있는 ‘공정 열풍’의 정치·사회적 배경이라는 것에 동의를 표했다.
윤 교수는 이어 “공정 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념이나 특정 정권에 국한될 이유가 없는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며 “공정과 정의에 대한 논의를 담대하게 이끌어야 미래의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단적 경쟁사회서 해결책 찾아보려는 몸부림이 시작됐다 - 박준식 교수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공정성 담론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살폈다. 신 교수는 “공정성 논의가 자칫 분배의 강조로 흘러가면 부의 생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소홀해질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대기업 등 강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불공정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와 이의 제도화”라고 지적했다.
공정사회 논의 걸음마 정부차원 벗어나 시민사회로 확장시켜야 - 박태순 소장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발제1: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의 담론 분석과 공정한 사회 ▼
압축성장 이면엔 반칙… 정의 신드롬은 그 앞에 레드카드 꺼낸 것 - 윤평중 교수
분단과 전쟁의 폐허 위에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땀과 눈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양적 성과 옆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과 형편없이 낮은 행복지수, 미래에 대한 총체적 불안, 극심한 국론 분열과 사회적 불신이 혼재한다.
폭발적인 발전과 성장의 뒤안길에서 편법이 횡행하고 반칙이 구조화됐던 것이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했던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관행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이나 다수의 고위 공직후보자가 낙마하는 인사청문회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불법과 반칙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관심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쌓여온 편법과 반칙을 광정(匡正)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이 폭발한 결과다. 진보적 의제인 공정성과 정의를 신보수 정부가 선창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공정성과 정의의 실현이 좋은 나라의 보편적 운명이라는 점에서 한국사의 진화 단계가 이제 불가역의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사태이기도 하다.
‘공정한 사회’의 이념은 특정 정권에 제한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가 패자부활전을 확립해야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정 의무를 진다고 명령하고 있다. 보편화한 ‘공정한 사회’의 이념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와 부합하며, 선진국의 규범적 표준이자 근본 가치인 사회정의론의 지향과도 일치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 발제2: 왜 지금 여기서 공정사회인가 ▼
지나치게 분배 강조땐 ‘부의 생산’ 소홀 우려… ‘결과의 평등’ 경계해야 - 신중섭 교수
이명박 정부의 ‘공정한 사회’를 평등과 분배가 강조된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해 현 정부가 공정과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롤스 이론의 가치는 그가 제시한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만든 사고 절차에 있다. 단순하게 평등의 정도가 높은 사회를 더 ‘공정한’ 사회로 오인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단정은 이런 오해에서 나온다. ‘평등’과 ‘공정’은 엄연하게 구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힘 있는 자들의 도덕심에 호소해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힘 있는 사람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그들의 도덕심에 호소해 공정한 사회를 성취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성 담론의 초점은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제도로 옮겨져야 한다.
공정성 담론의 ‘지나침’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도 유의해야 한다. 공정이 미래를 위한 동력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판단하는 잣대로만 작동하면 이는 오히려 우리 사회를 분열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가 사회적 부조리의 척결을 넘어 부와 직책의 평등한 분배까지 요구하면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또 과도한 정부의 개입으로 경제의 자율성을 해쳐 ‘이념’이 경제를 압도할 수 있다. 이념이 경제를 압도하면 경제 정책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이념에 종속돼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공정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최소주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정에 대한 가치와 평가는 신념이나 이념에 따라 크게 다르다. 국가는 ‘공정한 사회’와 같은 추상적 의제가 아니라 합의가 쉬운 구체적인 사회악의 제거를 자신의 역할로 삼아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참석자 ::
발제자: 윤평중 한신대 교수, 신중섭 강원대 교수
토론자: 박준식 한림대 교수,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사회자: 이병혜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