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과학철학 넘나드는 21세기 토머스 쿤”
최재천 교수
절대온도라는 게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일체의 분자운동이 일어나지 않아 열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이론적 최저온도를 절대 0도로 가정하고 분자운동의 정도에 따라 온도를 측정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물이 어는점을 0도, 그리고 끓는점을 100도로 정하고 뜨거움과 차가움의 상대적인 정도를 측정하는 섭씨온도를 사용한다. 문제는 ‘물은 항상 일정한 온도에서 얼고 끓는다’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만든 온도계로 재보았더니 물을 담은 용기의 매개물질에 따라서 끓는점이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온도계를 만들어낸 가설이 온도계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이처럼 온도계에 얽힌 과학, 역사, 그리고 철학을 통해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과학적 상식을 뒤엎은 책 ‘온도 발명하기(Inventing Temperature)’로 2007년 과학철학 분야 최고 권위의 러커토시상을 받고 일약 대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바로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다. 그는 지난해 9월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베스트셀러로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친형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케임브리지대의 과학사·과학철학과에 젊은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4일 부친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의 뿌리를 파헤치는 일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 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방한한 장 교수는 7일 출국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다만 중학교 시절부터 서양에 유학해 전형적인 서양 맥락의 연구를 하는 그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라는 우리 국민의 호사를 넘어 우리나라 과학철학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국내 대학으로 모셔오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혹여 그리 하고 싶어도 우리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다.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를 비롯해 자연과학이 특별히 강한 세계적인 대학들에는 대개 과학사나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독립적인 학과 또는 연구센터들이 있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기반으로 쌓아 올리는 과학의 질이 그렇지 않은 과학보다 훨씬 우수하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를 배출한 서울대의 ‘과사철’이 여전히 협동과정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