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찰, 최대규모로 요지에 우뚝
룸비니 동산에 세워진 마야사원과 푸스카리니 연못. 왕비는 아들을 낳은 후 이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를 방문한 월주 스님(왼쪽에서 세 번째) 일행이 대웅전 앞에서 법신 주지 스님(왼쪽에서 네 번째)을 격려하고 있다. 룸비니=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최근 석가모니 부처가 탄생한 네팔 룸비니를 둘러본 지구촌공생회 송월주 이사장(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은 국제사원구역에 우뚝 선 대성석가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떠 건립되고 있는 높이 42m의 대웅전은 인근에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 20여 개국이 지은 각국의 고유 사찰을 압도한다. 룸비니 성지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데다 최대 규모(3만9600m²·약 1만2000평)를 자랑한다. 기단부 3360m², 대웅전 1층 1600m², 2층 960m², 3층 480m²의 대(大)도량이다.
네팔 남부 타라이 지역에 위치한 룸비니는 기원전 563년 훗날 석가모니라고 불린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불교 성지. 석가모니는 석가(釋迦)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싯다르타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슈도다나 왕과 마야 데비 왕비 사이에서 잉태됐다. 임신 10개월이 된 어느 날 왕비는 당시의 풍습대로 친정인 콜리아 성에서 해산을 하기 위해 카필라 성을 나섰다. 하지만 중간 지점인 룸비니 동산에서 산기를 느껴 숲이 울창한 이 언덕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무우수(無憂樹·보리수) 가지를 붙들고 서서 출산했고, 옆구리를 통해 아이를 받았다고 한다. 룸비니는 싯다르타의 외할아버지가 아내의 이름을 따 조성한 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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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아래에 선명하게 새겨진 ‘아기 부처’의 발자국 모양.
현재 이 지역 주민의 90%가량이 이슬람교도다. 1956년 네팔의 마헨드라 왕은 동산이 방치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10만 루피를 복원기금으로 조성해 재건에 착수했다. 네팔 정부는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버마(현 미얀마) 출신 우 탄트에게 유엔 산하 룸비니개발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고, 1967년 룸비니를 방문한 그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룸비니개발위원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룸비니동산 근처의 일정 용지를 99년간 사실상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조건으로 각국 고유의 불교 사찰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했다.
룸비니 동산에 세워진 마야사원 안에 있는 부처님 탄생 설화를 담은 조각상.
아직 단청이 되지 않은 대웅전의 3층에 오르니 룸비니 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처님의 법음(法音)이 들려올 것만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위치가 좋고 룸비니 동산에서도 제일 가깝다”는 주지 스님의 자랑이 사실임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북쪽으로는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설산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법신 주지 스님은 “나는 경전 공부 쪽으로는 막혔고, 공사하는 쪽으론 머리가 터졌다. 하지만 내 공덕이 아니다. 3·1운동 33인 중 한 분인 용성 스님이 ‘부처님 성지에다 법당을 지으라’고 분부하셨고, 그분의 손상좌이자 제 은사이신 장수 죽림정사 불심 도문(佛心 道文) 스님의 원력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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