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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밀라노 ‘구두박람회’··· 전세계 ‘슈즈 홀릭’ 사로잡은 ‘신발의 향연’

입력 | 2011-03-18 03:00:00


2011 밀라노 국제 구두박람회(미캄·MICAM)에는 이탈리아는 물론 인근 프랑스, 스페인 등지의 신발 제조업체 1660여 곳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참여 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온종일 걸어 다녀도 모든 전시 부스를 한 번씩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전시장이 넓다. 밀라노=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못 말리는 ‘슈즈 홀릭(구두 중독)’으로 나오는 여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에게 지상의 천국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곳이라 답하지 않을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구두박람회(미캄·MICAM)를 둘러봤다면 누구나 이런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6일부터 9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시 외곽에 위치한 컨벤션센터인 ‘피에라 밀라노’에서 열린 미캄에서는 신발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라면 일생에 한 번쯤은 꼭 순례해야 할 신발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프랑스 등 세계 20여 개국, 1660여 신발 제조업체가 신사화, 숙녀화부터 레저용 신발과 아동용 신발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발을 전시해 놓고 전 세계 바이어들을 향해 구애의 미소를 던졌다.

○ 신발 메이커들의 가을 축제

미캄은 일 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열린다. 가을 미캄이 이듬해의 봄·여름용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라면 3월에 열린 이번 행사는 올해 가을·겨울용 ‘신상’의 트렌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유럽은 물론이고 러시아, 중동, 중국, 한국 등 전 세계 신발 판매상들이 자국에서 ‘대박’을 터뜨릴 상품을 찼으려고 몰려든 덕분에 전시장은 나흘 내내 인파로 북적였다.

미캄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튼튼한 체력과 쿠션 좋은 운동화는 필수다. 한국 코엑스 대형 전시관을 여러개 합친 넓이의 전시장(7만3000m²)에 수많은 신발 브랜드의 부스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전시장 지도의 도움 없이는 ‘신발세계’의 미로에 빠져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신발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전시장의 위치가 다른데, 전시장 사이를 이동하려면 무빙워크를 타고 한참 이동해야 할 정도로 전시공간이 광활한 것이 인상적이다.

미캄은 숨은 진주 같은 좋은 신발을 선점하려는 전세계 신발 바이어들의 소리없는 전쟁터다. 사진은 신발 구매자와 구두 제조업체 직원이 상담을 하는 모습. 밀라노=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미캄에 출품된 신발은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아 양산하기 위한 견본제품이기 때문에 패션쇼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공개하는 전위적인 신발과의 만남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실망은 금물이다. 전시장 부스를 거닐다 보면 당장이라도 가방에 담고 싶은 욕심 나는 신발들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눈에 든 아이템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이탈리아제 가죽 부츠. 패션의 나라에서 만든 제품답게 굽 높이가 족히 10cm는 될 것 같은 킬힐 부츠다. 취재를 도와준 현지 코디네이터는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각선미를 살려주는 가죽 롱부츠는 한여름에도 즐겨 신는 인기만점 아이템이라고 했다.

트렌디 여성화 섹션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발 전체를 스팽글 장식으로 빽빽이 감싸고 나무 통굽을 달았거나, 천으로 만든 풍성한 리본을 발뒤꿈치에 단 여성용 구두처럼 화려함을 강조한 아이템이 있는가 하면, 통상 상표 정도만 밋밋하게 붙여 놓는 구두 안창에 플로럴 패턴이나 호피 무늬를 프린트해서 신발을 벗었을 때 신발의 숨겨놓은 2%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아이템도 눈길을 끌었다. 발목에서 무릎까지 부츠 전체를 가죽 끈으로 엮어서 만든 ‘검투사 부츠’나, 발등을 뺀 신발 전체를 모피로 감싼 구두, 구두의 힐 부분을 여성용 립스틱 모양이나 주사위를 여러 개 쌓은 모양으로 성형한 아이디어 구두도 구경할 수 있었다.

○ 관람객들도 신발 멋쟁이

신발 박람회답게 관람객 중에도 신발 멋쟁이가 한둘이 아니다. 전시관 한쪽에 앉아서 다리를 쉬게 해주고 있는 한 여성 관람객의 발에는 디자인은 똑같은데 왼쪽에는 회색, 오른쪽에는 핑크색 리본 장식이 달린 맵시 있는 구두가 신겨 있다.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생긋 웃음이 돌아왔다. 점잖아 뵈는 은발이 인상적인 캐주얼한 노신사 관람객은 20대도 소화하기 힘든 화려한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과연 물리적인 나이보다 정신적인 나이가 더 중요하다더니…’ 하며 감탄하는 찰나, 노신사보다 어림잡아 20년은 어려 보이는 이탈리아 미녀가 다가가 노신사의 팔짱을 꼈다.

전시장이 워낙 넓다 보니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각 부스의 아이디어 전쟁도 치열하다. 부스 앞에 전통 수제 구두 제작시연을 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늘씬한 모델이 직접 구두를 신고 살아 있는 마네킹처럼 쇼윈도에서 수시로 포즈를 바꿔가며 관람객을 맞는 부스도 있다. 각 부스의 입구에서 안내 도우미를 맡은 여성들 역시 다리가 높은 의자 위에 자사의 제품을 신은 채로 앉아 각선미를 뽐낸다.

수많은 관람객에 치여 다리도 뻣뻣해지고 목도 컬컬해 질 때쯤 각 부스의 안내원이 앙증맞게 생긴 종이컵에 담아 내오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머지 전시장을 돌아볼 힘을 얻을 수 있다. 점심시간에 안내 도우미와 신발 모델들이 점심 대용으로 보이는 커다란 피자박스를 든 채 전시홀 통로를 리드미컬한 워킹으로 가로지르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미캄 참관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밀라노 ‘패션잡화 박람회’도 인기▼
‘하이브리드’ 장갑··· 동물뼈 우산··· 폐타이어 재활용 가방


2011 밀라노 잡화박람회(미펠·MIPEL)의 빈티지 코너에 전시된 화려한 여성용 모자와 머리장식용 액세서리(왼쪽)가 눈길을 끈다. 박람회에 출품된 핸드백을 비둘기 그림이 그려진 벽면에 걸어 독특한 전시효과를 냈다. 밀라노=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예쁜 신발을 봤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그 신발에 어울릴 가방이다. 미캄이 열린 피에라 밀라노에서는 핸드백 등 가방류와 장갑, 지갑, 벨트, 스카프 등 각종 패션 잡화를 선보이는 밀라노 잡화 박람회(미펠·MIPEL)도 동시에 개막됐다.

신발이라는 단일 품목만을 다루는 미캄과 달리 미펠은 아기자기한 패션 소품이 많아 미캄 전시장을 둘러 볼 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시장에서 단숨에 기자의 눈을 잡아 끈 아이템은 다름 아닌 가죽을 누벼서 만든 벙어리장갑. 가죽을 벙어리장갑의 소재로 쓴다는 발상도 신선했지만 가죽에 녹색을 입힌 가공 솜씨도 이에 못지않게 놀라웠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부분은 가죽으로, 손바닥과 손등이 닿는 부분은 모피로 마감한 핑크색 ‘하이브리드’ 장갑도 보였다. 보통 매끈하게 마감하는 손잡이를 동물의 뼈를 소재로 사용해 동물 얼굴 모양으로 만든 우산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창의적인 전시기법을 감상하는 것도 미펠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스카프를 마네킨의 목에 두르거나 서랍 속에 가지런히 담는 대신 투명한 유리 항아리에 담아 디자인의 유려함과 볼륨감을 잘 살려줬다.

미펠의 메인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가방들은 소재와 디자인에서의 파격적인 실험들이 돋보였다.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쇼 ‘헬스 키친’의 브랜드 사용계약을 맺은 한 가방업체는 폐타이어 고무를 재활용해 만든 친환경 가방을 선보였다. 타이어 특유의 검은색이 가방에서도 제법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모피 소재로 만든 ‘퍼(Fur) 백’은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줬고, 광택이 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클러치백은 싸구려 소재로도 얼마든지 고급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

미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는 프라다, 에르메스, 베르사체, 디올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중고 가방, 안경, 의류 등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빈티지 코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다리품을 부지런히 팔고 운까지 따라준다면 오드리 헵번이 썼을 법한 복고풍 명품 선글라스를 30∼40유로(약 4만7000∼6만2000원)만 주고도 구입할 수 있다. 빈티지 코너에는 20세기 유럽 여성들의 헤어 스타일링 변천사를 사진과 그림으로 전시해 놓기도 했다. 다만 미캄 전시장과 마찬가지로 예쁜 패션 소품들을 담아가고 싶어 카메라를 꺼내면 디자인 유출을 우려하는 업체 관계자들의 ‘노 뽀또(사진은 안돼)’라는 강한 이탈리아 억양의 영어 지청구를 각오해야 한다는 점은 아쉽다.

밀라노=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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