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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역시 경제엔 공짜가 없다

입력 | 2011-03-15 20:00:00


배인준

성장, 물가, 일자리, 격차 완화, 내수 확충, 수출 증대, 금융 발전, 인적 경쟁력 같은 경제의 핵심 과제들이 이명박 정부에서나 차기 정부에서나 서로 선순환하며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만큼 차기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들도 너무 가볍게 만병통치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유권자인 국민들도 7% 성장이니, 2% 물가니, 일자리 300만 개니 하는 숫자가 나오거든 일단 그런 약속은 무시하고 볼 일이다. 공약(空約)이 될 공약(公約)에 속는 국민이 있으니까 표가 급한 정당과 후보들이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 프렌들리’로 시작해 ‘친서민’ ‘공정사회’ ‘상생경제’로 새 길을 찾으려 했다. 한편으론 경쟁과 효율을, 또 한편으론 약자 응원을 꾀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흔히 말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역시 쉽지 않다.

7·4·7(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이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던 정부인 만큼 성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성장 없이는 일자리도, 복지도 없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다. ‘기업 프렌들리’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려던 것도 기업이 성장의 핵심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 초기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고환율(원화약세) 정책을 추구한 것도 수출 촉진 효과 등을 감안할 때 당시로는 일리가 있었다.

환율 덕 본 대기업, 민생은 물가苦

MB 정부 3년의 경제성장률(2.3%, 0.2%, 6.1%)은 연평균 2.8%였다. 이를 두고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톱클래스라거나 신흥경제국인 브릭스(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보다는 낮다거나 하는 얘기는 별 의미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도 선전(善戰)했다. 원전, 유전 같은 미래를 위한 손에 잡히는 성과도 적지 않았다. 동시에 성장의 그늘도 있다.

이 대통령이 경제운용의 초점을 물가에 맞추겠다고 선언할 만큼 인플레이션이 심상찮다.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요인의 하나지만 경제운용의 부작용도 반영됐다. 과감한 재정운용이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서 효과를 낳은 반면, 통화 공급 확대정책이 인플레를 부추겼다. 또 경쟁국들에 대한 상대적 고환율(원화약세)은 수출 대기업들의 외형과 이익을 키워줬지만 민생에는 수입물가 상승→소비자물가 상승에 따른 물가고를 가중시켰다.

그렇다고 양질의 기업 일자리가 확확 늘어난 것도 아니면서 자영업 실패는 증가했다. 2005년 평균 597만 명이던 자영업자는 2010년 평균 548만 명으로 줄었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금융부채는 2007년 744조 원에서 작년 3분기 897조 원으로 늘었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이후 역대정부가 금융개혁을 외쳤지만 자본 중개 기능은 여전히 몇몇 은행에 몰려 있고, 은행들은 그저 예대 마진에 의존하는 이익 창출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자까지 만기 연장을 해주면서 돈을 빌려 준다.

가계부채 900조 원은 이자율이 1% 상승하면 연 9조 원의 추가 부담을 안긴다. 빚 있는 가계는 수입이 있어도 이자 갚느라 쓸 돈이 적다. 구매력(소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수가 확충되지 않으니 일자리 증가도 더 어렵다.

작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362억 달러였고, 이 가운데 67%인 243억 달러가 부품·소재 적자였다. 핵심 부품·소재 기술경쟁력에서 일본을 따라잡기는 요원하다. 우리처럼 완제품 조립생산 중심의 제조업을 하는 중국은 한국 기술력을 바짝 추격하면서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완제품에서 한국과 품질경쟁을 하면 할수록 일본의 첨단부품은 한국에도, 중국에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대일 격차는 못 좁히면서 중국의 위협을 받는 형국이다. 첨단기술 경쟁에서 추월은커녕 밀리는 상황이 굳어지면 수출한국의 미래도 어두워진다.

이익공유제 대신 기술 지원하라

정운찬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을 꺼내 논란이 되고 있지만, 현실성 없는 평지풍파 발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정 전 총리는 “이익을 나누는 대기업에는 인센티브를 강하게 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 또한 탁상공론이다. 인센티브라면 세금이나 금융 혜택일 텐데, 이는 결과적으로 고수익 우량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한 번 더 돕는 꼴이다. 혼란이 뻔하고 기업의 이노베이션(혁신) 동기마저 약화시킬 이익공유를 꾀할 것이 아니라 납품가를 후려치는 기업에는 공정거래법의 칼을 엄하게 들이대고,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한테는 법정 세금을 확실하게 물리는 것이 정답이다. 진실로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면 중견·중소기업들의 부품·소재 기술개발을 선별적 전략적으로 지원해 핵심기술 경쟁력을 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경제의 지속발전을 위한 답이요,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