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3월의 눈’ 연기★★★★☆ 대본★★★★ 연출★★★★ 무대★★★☆
국립극단 제공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개관작 ‘3월의 눈(雪)’(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은 이렇게 극이 시작되자마자 무대 소품들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한때는 소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린 사물들.
이 한옥에 사는 노부부 또한 평생 살던 집에서 밀려날 처지다. 국립극단의 살아있는 역사인 백성희 씨(86)와 장민호 씨(87)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노부부를 연기한다. 무대에서 부부 역만 100회 이상 맡았다는 두 배우의 연기인생과 작품이 하나로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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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사람들이 몰려와 마루를 뜯어낸다. 집은 이미 팔렸고, 부부는 다음 날이면 양로원으로 가야 할 처지다. 잇속이 우선인 새 주인에게 세월의 무게는 안중에도 없다. 다음 날이면 집은 완전히 분해돼 어느 부잣집 거실 탁자가 되고 장식장이 될 운명이다.
집의 최후를 보고 싶지 않은 장 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3월인데 하늘에선 눈발이 흩날린다. 장 씨가 아내를 향해 독백처럼 말한다. “그래두 이 집이 나보단 낫군. 흩어질 땐 흩어지더라두, 뭐가 되든 된다네…. 책상두 되고, 밥상두 되고, 허허. 섭섭헐 것두 없구, 억울헐 것두 없어. 빈손으루 혼자 내려와서 자네두 만나구, 손주, 증손주까지 보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괜찮구 말구. 이젠 집을 비워 줄 때가 된 거야, 내주고 갈 때가 온 거지.”
하, 우리 인생이 그렇구나. 흩날리는 동안 잠깐 찬란하지만 땅에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3월의 눈 같은 것이구나. 늙었다고, 낡았다고, 느리다고 괄시할 게 아니구나. 우리 또한 곧 그렇게 될 처지구나.
구순이 가까운 두 배우가 팔십 분간 펼치는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다. 발성은 빈틈없이 정확하고 또렷했다. 육순만 넘겨도 대사를 까먹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일부 후배 배우들에게 일갈하는 듯했다. “우리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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