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1997년 삼성車 악몽이…”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3일 기자에게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싸고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는 영남권 내부의 갈등 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요즘 동남권 신공항 사태를 보면 영남권 분열로 정권을 넘겨준 1997년 대통령선거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고 우려했다. 1997년 대선 때 당시 한나라당은 근거지인 영남권의 분열을 막지 못해 결국 대선 패배를 맞았다. 여권 일각에서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연기나 사업 재검토 주장이 나오는 배경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권이 두 동강 나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본보 3일자 A6면 참조
A6면 與, 동남권 신공항 연기론 솔솔… 현지선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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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차 사태는 당시 삼성그룹이 자동차산업 진출을 검토하면서 시작됐다. 김영삼 정권의 본거지인 부산 지역은 지역 경제를 이끌던 신발 산업이 사양화되자 삼성차 공장 유치를 강력히 희망했다. PK 정권 실세들이 부산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대구 역시 지역 경제의 견인차이던 섬유산업이 쇠퇴하자 삼성차 공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두 지역의 경합이 계속되자 상용차는 대구로, 승용차는 부산으로 보내자는 궁여지책까지 나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계획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두 지역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진 채 대선을 치른 것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김현철 부소장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을 보면 TK와 PK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의 분열과 단결이 전체 선거 판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1992년 대선 당시 고 김윤환 전 의원이 중심이 된 옛 민정(민주정의당)계 TK 주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 아래 PK 출신의 김영삼 후보를 적극 지원했다. 김대중 후보를 상대로 영남권이 일치단결한 것이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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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 영남권 단결은 필요조건
2007년 대선에서도 영남권은 분열됐다. 보수성향의 제3후보로 이회창 후보가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반노무현 정서 등을 바탕으로 호남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우위를 보였기 때문에 영남권 표의 부분적 이탈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년 대선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야권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뤄지면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 후보 간에 박빙의 승부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한나라당은 야권이 영남권 분열의 틈새를 노려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우는 시나리오를 내심 우려하는 모습이다. 여권이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심각한 정치적 사안으로 보는 이유다. 또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이나 김두관 경남지사 등 영남 출신의 야권 예비 주자들에게 경계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