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의 세상이 마법사와 비(非) 마법사로 구분되듯, 야구팬의 세상은 야구팬과 비 야구팬으로 나뉜다. 오직 야구팬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증상들. 서로가 동족임을 알아보게 하는 몇 가지 증세들을 ‘팬심’의 단계별로 모아 보았다.
이제 막 야구의 재미를 알기 시작하는 1단계에는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 같은 증상을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내 팀과 내 선수를 자랑하고 싶고, 행여 우리 팀을 폄하하는 댓글이라도 보는 날에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응징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자주 ‘야구’라는 단어를 입력해 신간을 검색하며, ‘압구정 포차’를 ‘야구장 포차’로 잘못 읽는 등 전혀 맥락도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야구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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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 가기 위해 족보에도 없는 분을 고인으로 만들기는 예사. 각종 모임, 쇼핑, 병원 진료 등은 월요일에 몰아서 하는 센스도 기본이다.
3단계는 비판적 관망의 자세. 야구장에 가면 환호와 응원보다는 욕설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날이 갈수록 징크스가 다양해져 일상생활이 불편할 지경이다. 그러다가도 길가다 우리 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만주 벌판에서 독립군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서는 무턱대고 말을 걸고 싶어진다.
4단계. 남녀관계로 치면 10년쯤 산 부부와도 같은 경지랄까. 더 이상 예쁘지도 곱지도 않지만, 더러운 게 정이려니 하며 체념과 자학으로 버틴다. 야구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생활 그 자체가 되어 일상에서 야구 관련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예를 들어 “흥! 이대호 50도루 하는 소리 하네!”) 각종 모임에서 우리 팀의 응원가를 진지하게 불러 빈축을 사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줄줄이 야구 게시물이 나오고, 지나간 야구 경기를 PMP에 담아 보며 깔깔대고 웃는 내 자신에 흠칫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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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선(野仙) : 야구의 신선
구율화 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