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타임캡슐20∼400년 후 열어보게… 시내 20여곳 땅속에 묻혀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천상병 테마공원’은 시인 천상병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2009년 만들어졌다. 이 공간에는 천 시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새’가 적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그의 대표작인 ‘귀천(歸天)’ 시비(詩碑)도 있다.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완전히 새처럼 날아가진 못했다. 시비와 기념비 밑에 그가 쓴 편지와 일기, 시낭송 CD, 즐겨 듣던 라디오, 즐겨 마시던 맥주와 막걸리 등 유품 70점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노원구는 2009년 천상병 시인을 기리기 위해 ‘천상병 타임캡슐’을 만들어 이곳에 묻었다.
○잊고 있던 발밑 서울 타임캡슐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그 밑에는 역사를 품은 타임캡슐이 깊은 겨울잠에 빠졌다. 최근 서울시가 조사한 시내에 묻힌 타임캡슐 개수는 20여 개. 이 중 서울시 및 산하 기관, 자치구가 관리하는 것은 6개다. 그 외는 기업 및 학교, 국가 기관 등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 타임캡슐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중구 필동 한옥마을에 묻힌 ‘서울 천년 타임캡슐’이다.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서울시는 보신각종을 본뜬 캡슐을 만들고 서울을 상징하는 문물 600점을 담았다. 1994년 최고 음반 판매를 기록한 가수 김건모의 2집 CD, 쉰들러리스트 영화 CD 같은 문화상품부터 소형 카세트, 우황청심원, 버스 토큰 등이 캡슐 안에 담겨 있다. 봉인 해제는 400년 후인 2394년이다.
이후 타임캡슐 제조 열풍이 일었다. 1995년 대검찰청은 근대 검찰제도 도입 100주년을 기념하는 ‘검찰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두산그룹은 1996년 창업 100주년을 기념하며 회사 역사자료들을 넣은 타임캡슐을 종로구 종로4가 광장시장 앞에 묻었다. 이 중 검찰 타임캡슐은 가장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개봉되는 캡슐(2395년)로 알려졌다.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짧게는 20년, 길게는 400년 이상 잠들어 있어야 하는 만큼 부식을 막는 것이 관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 스테인리스 특수강으로 몸통을 만들고 내부에 세균 번식을 막아주는 아르곤 가스를 넣어 진공처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내용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사후 관리’다. 그동안 타임캡슐 정책은 매설 기념식 이후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다. 백호 서울시 행정국장은 “당장은 열어볼 수 없지만 고고학적 차원에서 귀중한 자료”라며 “테마별 타임캡슐 ‘스토리텔링’ 자료집 발간, 각종 기념행사 개최 등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