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문화부장
재판관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대로 왕을 승계한 사람은 가장 덕이 높은 아들이었으니, 세 아들이 각각 자신의 행실을 통해 반지의 진정한 주인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싱은 이 일화를 종교 간 갈등 해소를 강조하기 위해 극에 도입했다. 이슬람 군주 살라딘이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에서 어느 것이 참종교냐”고 묻자 현자 나탄은 위의 우화를 들려준다. 각 종교가 인간 세상에 덕을 베풀어 자신들의 진리가 참다운 것임을 밝혀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물론 이 가르침에는 완전히 납득되지 않는 점도 있다. 각 종교가 베푸는 ‘덕’은 어떤 기준에 따라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에서 예수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한 점도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가 다르며 신자가 먼저 구할 정의는 신적 정의임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세상을 화평케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세속의 정의가 신의 의지, 의도와 아예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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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구절을 들어 ‘종교는 세속의 영역에 간섭하지 말라’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지난 시기에 주요 종교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고 많은 종교적 성소가 민주화의 성소였다. 국민의 뜻을 온전히 받드는 정부를 갖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가 주는 가르침과 일치하면서 국민 대부분의 합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여러 가치가 부닥치고 엇갈리는 문제에 신의 이름을 들고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하다. 종교가 갖는 고유의 높고 환한 영역을 굳이 속세의 저잣거리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이슬람채권법 문제의 경우 반대 측에서는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지만 ‘교리의 특수성 때문에 발생하는 불이익을 보정해 주는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테러 집단에 자금이 흘러들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명백한 정황 없이 얘기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된 다문화가정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거듭 상기하거니와 영적 구원을 목적으로 한 종교와 경세제민(經世濟民)이 목표인 정치가 지향하는 바는 차이가 있다. ‘적대’와 ‘우호’를 논할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전지자의 뜻에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차피 레싱이 말한 ‘인간 세상에 미치는 덕’에 따라 각 종교를 바라볼 방법밖에 없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