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석 사회부
피해자인 인니 측은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문제를 크게 벌이지 않은 채 귀국했다. 인니 측은 “위층에서 객실을 잘못 찾아온 손님들과 벌어진 일로 아무런 피해나 문제가 없다”며 수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숙소에 침입한 것으로 지목된 국가정보원은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실상 모두 수사를 원하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일부 여론과 야당은 최고 책임자인 원세훈 국정원장 경질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 이미지 추락이나 외교문제를 우려해 이 사건을 불문에 부치자는 여론까지 있다.
물론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이 뭘 주저하느냐는 질타도 있다. 수사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침입자들이 들고 갔다가 돌려준 노트북에서는 지문이 발견됐고 호텔 폐쇄회로(CC)TV에는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녹화됐다. 침입 현장을 목격한 호텔 직원도 있다.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국정원 직원이 경찰서를 찾아 각별한 보안 유지를 부탁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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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국정원 직원이 사건 직후 경찰서를 찾아 ‘입단속’을 했을 때부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이 국익을 위해 한 일이라면 처벌해도 실익이 없지 않으냐”고 말한 것도 이런 답답함의 발로일 것이다.
아직 실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법과 국익’ 사이의 그 어느 선상에 놓여 있는 듯하다. ‘엄격한 법 집행’과 ‘국가 이익의 옹호’라는 명제 앞에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사안인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의 가슴앓이가 깊어지면서 국민의 답답함도 함께 커지고 있다.
장관석 사회부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