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추문 있어도 노출 안 되는 구조
한 예술계 인사는 “음악계 내부 문제는 밖으로 노출되는 적이 거의 없다”며 이번 일이 공개된 것 자체를 의아해했다. 학생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교수의 권한과 영향력이 어느 분야보다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대로 묻혀 지나갈 수밖에 없는 풍토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내부 고발을 하려면 학교를 떠나거나 음악을 포기하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일의 경우 가정에서 애지중지 신줏단지처럼 커온 요즘 학생들이 폭행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폭행 의혹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런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구조적 측면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술계 대학이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예술계 교수들의 힘은 주관적 평가에서 나온다. 예술 창작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교수들이 특정 학생의 예술적 성취도를 높이 평가할 때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기 어렵다. 무명의 예술지망생에게 교수는 자신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는 하늘같은 존재다. 교수들의 재량이 결정적인 만큼 더 큰 도덕성과 정의가 요구되는 분야가 예술계 대학이다.
외부로부터의 개혁 필요하다
하지만 예술계의 추문은 끊이지 않았다. 대학 입학 이전부터 시작해 음악 분야의 콩쿠르나 미술 분야의 공모전 심사, 교수 임용에 이르기까지 교육 및 양성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일부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적도 있다. 2008년 홍익대 미대 김승연 교수가 내부 고발을 통해 홍익대의 입시 부정을 폭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교수 6명이 내부 조사를 거쳐 대학 자체 징계를 받았으며 학교 측은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했다. 하지만 해당 교수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내부 고발에 나선 김 교수는 징계를 받은 교수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했고,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입시 비리 의혹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일부 교수는 지난해 이 대학 입시에서 다시 출제위원이나 심사위원으로 복귀했다. 이른바 명문으로 알려진 예술계 대학들의 난맥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반 국민이 공공 영역에 기대하는 도덕적 기준은 크게 높아졌다. 위장전입은 장관의 결격 사유가 됐고, 석연찮은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은 큰 공직을 맡기도 어려워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로펌에서 높은 연봉을 받은 변호사도 공직 진출을 꿈꾸기 어려워질 정도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의와 공정에 대한 인식이 한결 엄격해졌다는 기준에서 볼 때 명문 예술계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많은 국민에게 ‘아직도 이런 분야가 있을 수 있느냐’는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스스로 변화할 수 없다면 외부에서 나설 수밖에 없다. 서울대와 교육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예술계 교수들의 횡포와 비리에 대해 총체적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는 오늘도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이다. 예술세계에도 정의는 필요하다. 예술 교수가 예술에 침 뱉는 듯한 행태를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