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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 한국 재계/ 차세대 리더 54인 분석]경영 훈련은 어떻게

입력 | 2011-02-15 03:00:00

해외 MBA로 ‘후계 수업’→ 전략-기획부서 ‘실습’




《 최근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 수업을 받은 지 21년 만에 회장이 됐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그룹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재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하고 있다.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두산 대림 효성 대한전선 등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에 한창이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재계의 2∼4세는 누구인지 살펴보는 ‘재계 차세대 리더’를 5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한창 경영수업 중인 재계 3, 4세를 총망라해 분석한 기획은 국내 언론 중 처음이다. 》
동아일보 산업부가 국내 50대 그룹(자산 총액 기준) 중 오너가 있는 32개 그룹을 조사한 결과 오너 일가의 자녀로서 해당 그룹에 입사했거나 입사 뒤 유학을 떠나는 등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2∼4세 차세대 리더는 모두 54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차세대 리더’는 삼성 현대차 현대중공업처럼 지배권이 확실한 그룹은 회장이나 대주주의 자녀로 제한했고, 두산과 LS그룹 등 창업주의 2, 3세 형제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그룹은 현재 회장의 자녀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포함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자녀는 제외했다.

○ 외아들이어서 경쟁 없이 ‘후계자’로 양성

한국 재계의 창업주들은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으켰고, 현재 회장을 하고 있는 2, 3세대는 형제들과의 경쟁 끝에 현재의 경영권을 ‘쟁취’했거나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과 달리 차세대 리더들은 일찌감치 후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다. 재벌가 역시 ‘저출산’이라는 사회 풍조를 비켜가지 못해 경영권을 다툴 형제가 없는 게 주된 이유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 오너 중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만 아들이 2명이고 나머지는 외아들이다. 1남 2녀를 두고 있던 정 의원은 45세에 늦둥이가 태어나 아들이 2명이 됐다. 두 아들이 열네 살 터울이어서 형제가 다툴 일은 없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혀도 아들이 2명 이상인 총수나 대주주는 6명에 불과하다. 김승연 한화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이 각각 3형제를 둬 다른 그룹 총수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차세대 리더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룹 후계자로 지목돼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8형제 중 둘째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대차 부품과장, 자재과장 등을 거쳐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러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한 지 1년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고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현대차 이사로 복귀했다.

차세대 리더 54명 중 20명이 미국 등 해외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고, 18명은 대학 학부를 미국에서 다녔다.

○ 필수 코스는 ‘기획’과 ‘전략’

이재용 사장은 23세에 삼성전자 총무그룹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줄곧 같은 회사 소속인 반면 이부진 사장은 25세에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 대리로 출발해 삼성전자 일본본사를 거쳐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입사 이후 행로가 달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임원 승진 후 첫 보직이 최고경영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경영전략 담당 상무보’였다.

차세대 리더들의 공통분모는 ‘기획’과 ‘전략’이다. 해당 그룹에 재직 중인 45명의 입사 후 이력을 조사한 결과 25명이 주력 계열사의 기획 관련 부서를 거쳤다. 특히 이재용(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정의선(현대차그룹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정용진(신세계 기획조정실 상무), 조원태(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 이해욱(대림산업 기획실장) 등 ‘후계자’들은 예외 없이 기획 관련 부서에서 일을 배웠다.

재계 관계자는 “기획과 전략은 그룹 전체를 파악할 수 있고 미래 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훈련받을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 수업에 필수 코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무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획은 풍부한 현장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한다”면서 “현장 경험 없이 기획 전략을 하는 것은 전투를 안 해본 군인이 사령관이 되겠다고 덤비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입사 후 6.6년 만에 임원 승진

재벌 자녀라고 해도 임원으로 바로 입사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해당 그룹에 재직 중인 45명 중 41명이 부장급 이하 직원으로 입사했다. 임원으로 입사한 허세홍 GS칼텍스 전무와 이우현 OCI 부사장은 외국계 은행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대학 졸업 후 24세에 조선호텔 이사로 입사한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이례적인 경우다.

하지만 입사 후에는 초고속으로 임원 승진을 했다. 부장급 이하로 입사해 현재 임원급 이상이 된 사람은 28명인데 이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6.6년이다. 보통 월급쟁이들이 임원 승진하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보면 이보다 14∼15년 빨리 승진한 셈이다. 모 그룹 A 부장은 “사원으로 데리고 있다가 몇 년 뒤에 직속 임원으로 승진한 오너 3세를 대할 때 사원 때처럼 반말이 튀어나와 크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효성그룹 3세인 조현준(효성 사장), 현문(효성 부사장), 현상(효성 전무) 3형제는 모두 부장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이에 따라 너무 속성으로 임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본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27세에 차장으로 입사해 9년 만에 전무까지 승진한 박세창 금호타이어 한국영업본부장은 “필생의 각오로 책임지고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두산그룹의 4세 중 남자는 모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오너가 4세 중 임원급 이상인 7명이 입사해서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11년으로 다른 그룹보다 길다. 두산가 4세 중 그룹에 몸담고 있는 홍일점인 박혜원 두산매거진 전무는 가정주부로 있다 40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국장’으로 입사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평사원 입사는 2세인 박두병 회장이 3세에게 적용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리더 중 그룹 안에서 사장 이상으로 승진한 사람은 11명이다. 이들이 그룹에 입사해 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7.8년이다. 현재 회장 세대의 12.4년에 비해 4년 이상 짧은 것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입사 후 8년 만인 36세에 회장에 올라 승진이 가장 빨랐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은 나란히 입사한 지 19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해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