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다양한 이력의 학교장 출현 당연
‘21세기를 위한 교육개혁’을 시작한 1995년 이래 한국은 교육 분야에서 수많은 실험을 해오고 있다. 교장공모제도 이러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실험실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실험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실험과는 달리 현실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언제나 상당한 논쟁 및 혼란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CEO 출신처럼 노동조합 출신 교장을 배출하는 실험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보편주의적 이념과 신앙에 의해 지배되는 종교적 사회에서는 실험이 발붙이기 어렵다. 실험을 통한 사회공학에 비교적 관대하고 나아가 진보에 희망을 거는 사회는 이른바 세속화된 사회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급격하게 세속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사실 교육은 선진국에서조차 아직 종교의 영향 아래 본격적으로 세속화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북유럽이 특히 그러하다. 이렇게 세속화되지 않은 교육체제에서는 학교장의 지위가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추기경도 운전사도 신부인 것처럼 동질성을 지닌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 담당하는 하나의 자리처럼 간주된다. 이른바 ‘교직 성직관’이다. 노동조합 출신이나 CEO 출신 교장이 출현한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혁명적인 사태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CEO 교장, 전교조 교장의 출현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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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의 기본 임무는 잊지 말아야
필자는 우리나라 교장 자격 취득을 위한 연수기관의 대표 격인 한국교원대 교육연수원을 책임지고 있다. 신임 교장, 특히 교장 자격증 없이 교장직을 수행하게 될 분들에게 간곡히 당부할 점이 있다. 학교장은 법률이 그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는 독립된 전문가로서 자신의 자율성을 지켜야 하며 누군가의 단순 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장직은 교육청 등 학교 경영자의 대리인이 되거나, 소속 학교 교사집단의 대리인이 되거나, 아니면 기업계나 노동조합 등 외부 사회세력의 대리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자리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학교장 자리가 ‘교육의 부당한 지배’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어버린다. 더 나아가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위태로워지게 된다. 교장자격제도와 학교장직의 전문직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