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사태 닷새 만인 29일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한 것은 반정부 시위대의 개혁 목소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날로 거세지는 시위대의 기세를 무디게 만들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30년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을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퇴임 후 안전과 통치체제의 연속성, 퇴임 후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최측근을 내세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시위 진압에 투입된 군 병력과 경찰 일부마저 시위대와 교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미국 등 서방국들이 한목소리로 개혁을 압박함에 따라 사면초가의 처지로 몰리는 형국이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부통령을 임명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다. 그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비상계엄과 함께 대통령 직을 물려받은 이후 부통령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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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사건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 협력해 암살 사건을 계획한 무슬림 세력을 제거했다. 이후 테러에 관한 정보를 틀어쥐고 급진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데 앞장서 왔다. 미국을 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협정 조율에도 나섰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 내에는 그를 중동문제 및 대테러 전략에서 믿을 만한 대화상대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도 30일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며 긴밀히 협력해온 인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부통령 임명에 대한 시위대의 반응은 차갑다. 한 시민은 “무바라크도 술레이만도 필요 없다. 우리는 미국(친미파)이 지긋지긋하다”고 외쳤다.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의 사디 하미드 연구원은 “이집트 시위대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번 개각은 시위를 더 부추기고 대통령 퇴진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