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식과 실천 사이 괴리 좁히고 ‘공동진화의 길’ 열어라
경영 지식이 왜곡되면 그 지식에 기반한 경영자들의 의사 결정도 연쇄적으로 왜곡된다. 지식 생태계에서 DBR와 같은 고급 경영 매체가 할 일은 경영 지식과 실천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주는 일이다. DBR 자료 사진
이는 경영지식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 매체들이 항상 고민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특히 수준 높은 지식을 생성하고 확산시키겠다는 미션과 비전 아래 창간된 DBR와 같은 경영전문지는 잠시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질문들이다.
DBR 창간은 한국의 경영지식 생태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경영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려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DBR는 기존 다른 경제 경영 매체와 달리 독자층이 매우 적을 수도 있는, 어렵고 수준 높은 내용들을 집중 전달하는 특이한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초기 우려와 달리 DBR는 창간 후 짧은 시간에 국내 굴지의 경영전문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광범하면서도 열렬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데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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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경영지식의 압도적 다수는 실증주의 철학에 기초한다. 실증주의는 19세기 중반 이후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사회이론 전 분야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증주의에선 사유나 감정, 의지 등 비합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지식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 대신 관찰이나 경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이런 실증주의적 관점에서는 관찰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경영 현상만이 지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실증주의는 몇 가지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실증주의에선 관찰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하지 못한 현상에 대한 지식 창출이나 수용이 아예 불가능하다. 실제 경험하거나 관찰한 현상을 일반화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식 창출자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지식 창출 과정에서 각기 다른 현상들의 고유한 특수성과 차이를 무시해 결과적으로 더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인 지식을 창출할 수도 있다.
실증주의의 이런 한계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바로 해석학이다. 해석학에선 역사적으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경험을 획일적으로 객관화하고 일반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실증주의에선 과학적 지식 창출의 가장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꼽혔던 선입관이나 주관을 되레 바람직한 지식 창출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여긴다. 해석학에선 인간 지식의 진정한 원천은 경험, 관찰, 분석, 실험 등과 같은 이성적인 과정뿐 아니라 감정이나 의지, 주관적 성향 등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인 삶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확산됐다. 경영학계에선 각 조직이나 경영 상황마다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각 행위 주체들의 주관적 의미 부여에 초점을 맞춰 지식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실무 경영계에서도 업계에 일반화된 경영방식을 추종하기보다 자기 기업만의 특수한 전통과 문화, 상황에 초점을 맞춰 자신만의 고유한 경영모델을 찾아내려는 노력들이 이어졌다. 컨설팅업계도 다른 여러 기업이나 산업, 또는 국가들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사용돼 온 상황진단 도구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대신 고객 기업마다의 특수한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질적인 연구를 통해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컨설팅에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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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경영지식 창출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철학적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가 있다. 바로 지식과 실천 간의 관계다. 경영지식은 실제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사점 도출을 목적으로 하는 실천적 지식이다. 따라서 경영지식 창출과 확산에 종사하는 행위자들은 지식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갖는 수준을 넘어 반드시 지식과 실천 간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그 지식이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창출되느냐, 반대로 해석학적 관점에서 창출되느냐를 막론하고 모든 경영지식은 실제 경영 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는 경영지식이 지식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천의 영역인 경영 현상에 거꾸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경영학계나 컨설팅업계, 각 기업의 실무 경영자들이 실제 경영 현상으로부터 창출한 경영지식은 거꾸로 실무 경영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적극 반영돼 경영 현상 자체를 변화시킨다. 실제 경영 현상에서 나온 경영지식이 거꾸로 그 경영 현상 자체에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는 묘한 순환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지식과 실천의 쌍방향적 상호영향력에 대해 ‘제3의 길’의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2중 해석학(double hermeneutics)’이라고 불렀다. 2중 해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영 현상에 대한 지식이 왜곡되면 그 지식에 기초한 경영의 실천 영역도 연쇄적으로 왜곡된다. 경영지식을 창출할 때 지식의 정확성은 물론이고 그 실천적 시사점에 대해서도 깊이 있고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바로 이 지점이 DBR와 같은 하이엔드(high-end) 경영전문지가 전체 경영지식의 생태계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다. 즉, 경영 지식과 실천 사이에 발생하기 쉬운 왜곡된 2중 해석학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 서로의 왜곡과 결함을 보완·수정하는 긍정적 2중 해석학의 경로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경영 지식과 실천이 공동 진화(co-evolution)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경영지식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어떤 행위자들보다 하이엔드 경영전문지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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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base.yonsei.ac.kr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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