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우수인력 확보 디딤돌”… 與일각 “지역균형 발전 걸림돌”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를 서울 등 수도권에 세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말을 두고 기업과 정치권이 모두 술렁이고 있다.
기업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 숙원사업이 진전을 거둘지 잔뜩 기대하고 있는 반면 지방에 연고를 둔 정치인들은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워 반발하고 있다.
○ 기업 R&D센터, 도대체 어떻기에
현재 수도권에 기업 R&D센터의 설립을 막는 법적 규제는 없다. 실제로 기업 R&D센터의 분포 현황을 보면 연구비와 연구인력 모두 71.3%가 서울과 경기, 인천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왜 기업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R&D센터를 둘 수 없어 인재를 모으기 어렵다”고 아우성일까.
기업들이 R&D센터를 세우고 싶어 하는 지역이 주로 서울, 의정부, 수원, 성남, 인천 등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것도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 인재가 오지 않는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수한 인재들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데 누가 지방으로 가겠느냐”고 반문하며 “경기도만 해도 우수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 요지에 연구소를 둔 모 대기업은 박사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서울에 별도 사무실을 둘 정도다.
이 때문에 수치상으로는 수도권에 연구소와 연구원이 밀집한 듯 보일지 몰라도 기업에 꼭 필요한 인재는 찾기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 어떤 지원이 가능한가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정부가 R&D센터에 한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보유한 땅 가운데 그린벨트로 묶인 곳을 풀어주길 바라고 있다. 건폐율과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 센터 건물을 높게,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도 크다. 수도권에서는 입지 용도에 따라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물바닥면적 비율)은 50∼80%,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총면적 비율)은 50∼1500%로 제한돼 있다.
산업단지의 경우 R&D센터 이외의 영업부서를 두면 규정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점도 개선 요구 대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R&D를 통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영업적 측면에서 테스트를 하려면 R&D센터에 여러 시설이 필요하다”며 “용도지정을 할 때 70∼80% 정도만 R&D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술렁이는 정치권…제2의 과학비즈니스벨트 되나
기업 R&D센터가 지역 이익과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자칫 이 문제가 ‘제2의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지역 간 다툼의 불씨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대구 북을)은 “지방에 R&D특구를 설치하는 등 지역 균형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면서 “지방은 죽으라는 얘기냐”고 날을 세웠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핵심 참모는 “대통령이 총수와의 간담회에서 ‘단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 R&D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각 기업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R&D센터를 자체적으로 건립할 경우 이를 행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도 “R&D센터 문제가 전경련 건의 내용에 포함돼 있어서 대통령께서 원론적인 수준에서 얘기하신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